진여(陳餘)가 보낸 글은 대강 그랬다. 하수(河水) 가에서 고기잡이와 사냥으로 한가롭게 지내는 사람의 글 같지 않게 세상을 눈 밝게 보고 깊이 헤아려 써 보낸 글로서, 자못 사람의 심사를 건드리는 데가 있었다.
진여가 하수 가에 숨어살게 된 것은 부자(父子) 같이 지내며 생사를 같이해온 장이(張耳)와의 불화 때문이었다. 항우의 분전 덕분에 조왕(趙王) 헐(歇)과 더불어 거록성에서 무사히 풀려나게 된 승상 장이는 성밖에 나가 있다가 항우와 함께 들어온 대장군 진여를 만나자 말자 원망 가득한 얼굴로 캐물었다.
“우리 대왕과 내가 위급하여 대장군에게 구원을 요청하러 보낸 장염(張(암,염))과 진택(陳澤)은 어디 있소?”
“장염과 진택이 반드시 죽기로 싸워야 한다면서 하도 나를 꾸짖기에, 그들에게 군사 5000을 내주고 먼저 싸워보게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과연 내가 걱정한대로 되어버렸습니다. 그들은 강한 진나라 군사와 무리하게 싸움을 벌이다가 모두 죽고 말았습니다.”
장이가 무턱대고 원망부터 하자 진여도 성이 나서 그렇게 삐딱하게 받았다. 장이가 드러내놓고 의심쩍어 하는 눈길로 다시 물었다.
“대장군의 말을 얼른 믿을 수가 없구려. 군사 5000이 따라갔다면 개중에는 살아남은 자도 있을 터, 그들 가운데 하나를 불러 대장군의 말을 뒷받침하게 하실 수 있겠소?”
“그 5000 군사도 모조리 죽임을 당해 단 한 명도 빠져 나오지 못했습니다.”
더욱 성이 난 진여가 그렇게 짧게 받았다. 그래도 장이는 믿어주지 않고 은근히 넘겨짚기까지 했다.
“그것 참 희한한 일이구려. 어찌 그럴 수가 있겠소? 혹시 대장군이 그 두 사람을 죽여 귀찮게 졸라대는 입을 막아버린 것은 아니오?”
“승상께서야말로 어찌 이럴 수가 있습니까? 몇 달이나 성안에 갇혀 고생스러웠을 줄은 알지만, 이렇게 나를 깊이 원망하고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좋습니다. 그만두지요. 공(公)께서는 제가 장군 노릇 그만두는 것을 그리 아쉽게 여길 줄 아십니까?”
마침내 더 참지 못한 진여가 장군의 인수(印綬)를 풀어 장이에게 내밀며 그렇게 소리쳤다. 그제야 장이도 놀라 몰아세우기를 멈추고 얼버무렸다.
“그럴 리야 있겠소? 장염과 진택의 죽음이 하도 애달파 캐물었을 뿐, 딴 뜻은 없으니 이 인수는 거두시오.”
그러나 화가 풀리지 않은 진여는 인수를 그대로 풀어놓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때 장이의 빈객(貧客)가운데 한 사람이 가만히 다가와 장이에게 속삭였다.
“듣기로, 하늘이 주는 것을 받지 않으면 도리어 화를 입게된다[天與不取 反受其咎]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진여 장군께서 공께 장군의 인수를 바쳤는데도 받지 아니하시는 것은 하늘의 뜻을 거역하는 것으로 상서롭지 못합니다. 어서 그 인수를 거두십시오.”
하늘의 뜻을 핑계로 한 나라의 실권을 둘이 나누어 가질 수 없음을 슬며시 깨우쳐 주는 셈이었다. 장이도 그 말을 알아들었다. 진여가 풀어둔 인수를 자신이 차고, 그가 거느리던 군사들까지 거둬들이기로 마음먹었다.
되돌아온 진여는 서로를 위해 목을 베어줄 수도 있다고 믿어온 사이였던 장이의 그같은 변심이 놀랍고도 분했다. 진여는 가슴 깊이 장이를 원망하여 자리를 걷어차고 나와 버렸고, 장이는 기다렸다는 듯 진여가 거느렸던 군사들을 모두 제 밑으로 거둬들여 버렸다.
그 뒤 진여는 특히 그를 따르는 무리 수 백 명을 데리고 하수(河水) 가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고기잡이와 사냥으로 한가롭게 지냈는데, 문득 장함에게 그런 글을 보내온 것이었다.
하지만 의심이 많은 장함은 진여의 글을 받고도 얼른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먼저 군후(軍侯)인 시성(始成)을 가만히 항우에게 보내 마음 놓고 항복해도 좋을 만한 약조(約條)부터 받아내려 들었다.
그런데 장함의 그와 같은 뜻이 제대로 전해지기도 전에 항우가 먼저 움직였다. 항우는 포장군(蒲將軍)을 시켜 밤중에 군사를 이끌고 몰래 길을 돌아 삼호(三戶) 나루를 건너게 했다. 항우를 피해 다니다 장하(장河) 남쪽에 자리 잡게 된 진군(秦軍)의 한 갈래를 급습하기 위함이었다.
그러잖아도 기세가 잔뜩 움츠러들어 있던 진군은 포장군의 그 갑작스런 공격을 견뎌내지 못했다. 싸움다운 싸움 한번 해보지 못하고 그대로 무너져 달아났다. 그 소식을 듣고 힘이 솟은 항우가 전군을 휘몰고 뒤쫓아가 진나라 대군을 우수 가에서 또 한 번 크게 쳐부수었다.
그렇게 되자 장함도 다급해졌다. 더 재고 따질 겨를이 없이 사람을 항우에게 보내 항복의 맹약(盟約)을 맺으려 했다. 장함이 보낸 사자를 만나본 항우가 장수와 막빈(幕賓)들을 모아놓고 의논했다.
“오늘 장함이 사람을 보내 항복의 약조를 받으러 왔소. 우리 군사는 잘 싸웠고 기세도 여전히 날카롭소. 하지만 군량과 물자가 뒤를 받쳐주지 못하니 오래잖아 대군이 굶주리고 헐벗게 될 지경이오. 항복한 군사들을 모두 살려줄 뿐만 아니라, 저와 몇몇 장수들을 장군으로 써달라고 청하는 게 마음에 거슬리나, 나는 이제 장함의 항복을 받아들이려 하오. 궁한 적을 급하게 몰다가는 되레 물리게 되는 법, 여러분의 의견은 어떠시오?”
항우는 그렇게 물었으나 실은 내심의 결정을 통고하고 있을 뿐이었다. 싸움의 승패를 오직 항우 한 사람의 능력과 자질에 기대고 있다시피 하고 있는 장수와 막빈들로서도 달리 방도가 있을 리 없었다. 모두 입을 모아 대답했다.
“좋습니다. 상장군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이에 항우는 사자를 장함에게 돌려보내며 원수(洹水) 남쪽에 있는 은허(殷虛)에서 만나기로 약조하였다.
은허는 옛적에 은나라 반경제(盤庚帝)가 도읍으로 삼았던 북총(北총)을 이른다. 업성(업城=북경 부근) 남쪽 30리쯤 되는 곳인데, 그때는 옛 도읍의 터만 남아 있었다.
약조한 날 항우가 장졸들과 더불어 은허에 이르니 장함이 20만 진군과 함께 은허 벌판에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군사들은 모두 병장기와 깃발을 땅바닥에 뉘여 놓은 채 두 손을 늘어뜨리고 서 있었고, 투구를 벗고 산발한 장함은 스스로를 결박하고 항우 앞에 무릎을 꿇었다.
적에게는 무자비했지만 항복하여 무릎을 꿇는 자에게는 너그러울 수도 있는 항우였다. 거기다가 기개 있는 장수를 사랑하고 아낄 줄도 아는 다감함도 있었다. 어제까지는 힘겹게 싸웠던 적이었지만 눈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장함을 보니, 무쇠 같은 항우의 가슴에도 승패의 비정함과 무상함이 저리도록 절실하게 느껴졌다.
“일어나시오. 장군. 참으로 잘 싸우셨소. 진 것은 장군이 아니라 무도한 진나라요. 장군은 이미 하늘이 버린 나라의 군사들을 거느리고 지난 3년 잘도 버티셨소.”
그러자 장함이 눈물을 주르르 쏟으며 말했다.
“간악한 환관 놈이 어리석은 2세를 속여 천하를 어지럽히니, 하늘이 진나라로부터 명수(命數)를 거두신 지 이미 오래됐습니다. 그런데도 어리석고 미련한 이 장(章) 아무개가 천명을 어기고 이토록 장군의 위엄을 거슬러 온 것은 버마재비가 수레바퀴에 맞서려드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제 싸움에 진 못난 장수를 이렇게 따뜻이 거두어주시니 실로 몸둘 곳을 모르겠습니다. 다만 바라는 바는 졸오(卒伍)에 서서라도 장군을 따라 함양으로 들어가 간악한 조고의 목을 베는 것입니다.”
장함은 이어 불길이 듣는 듯한 눈길로 함양 쪽을 바라보다가 이까지 갈아가며 조고의 갖가지 죄상을 늘어놓았다. 장함을 묶은 끈을 풀어주고 윗자리에 끌어다 앉힌 항우가 위로하듯 말하였다.
“진나라에서 으뜸가는 명장을 어찌 졸오에 세울 수 있겠소? 장군은 옹왕(雍王)이 되어 우리 진채에 머물며 진나라 군사를 그대로 이끌어 주시오.”
그렇게 장함을 높여 써주었다. 항우의 너그러움 뿐만 아니라 왕을 마음대로 세울 수 있을 만큼 크고 높아진 그 위상을 짐작케 하는 일이다. 항우는 또 장함을 따라 항복한 장사(長史) 사마흔을 상장군으로 높여 앞장을 서게 하고, 도위(都尉) 동예(董예)는 장군으로 삼아 곁에 두고 썼다. 20만이 넘는 진나라 군사도 당장은 털끝 하나 다치지 못하게 했다.
글 이문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