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는 최근 공공장소에 세워진 단군상에 대한 대책을 ‘설립 반대’에서 ‘철거’ 쪽으로 바꾸기로 했다. 한기총의 논리는 ‘공공장소에 종교적 조형물을 세워서는 안 된다’는 것.
한기총은 지난해 말 ‘단군은 역사적 실체가 없는 허구이며 단군상은 종교적 조형물’이라는 소책자를 내놓았다. 이에 대해 단군상 건립을 주도한 홍익문화운동재단(홍문운)이 이 책자에 대한 배포금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냈다. 하지만 법원은 “단군상을 세운 목적과 형상 재료를 살필 때 다소간의 종교성이 인정된다”며 신청을 기각했다.
한기총의 정책 전환은 이 결정에 힘입은 것. 현재 단군상은 전국 초등학교 등에 350여개가 설치돼 있다. 한기총 관계자는 “물리적 방식은 동원하지 않고 학교장 등에게 자진철거를 설득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단군상을 보며 종교적 신심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보통 사람들은 단군을 종교적 지도자라기보다 우리 민족의 시조로 본다. 이들에게 단군상은 이순신 장군이나 세종대왕의 동상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한기총에선 홍문운이 허황된 국수주의적 논리를 퍼뜨리며 단군상을 종교적으로 이용한다는 불순한(?) 의도를 지적하지만 그 의도에 공감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또한 법원의 결정은 가처분 신청에 대한 것일 뿐 최종 판결이 아니기 때문에 얼마든지 뒤바뀔 가능성이 있다.
한기총의 주장을 보면 ‘공공장소에 종교적 조형물을 세워서는 안 된다’는 것은 명분일 뿐 결국 단군상을 통해 ‘우상숭배는 안 된다’는 본보기를 보여주려 한다는 혐의를 벗기 힘들다.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인 이만열 장로는 최근 한 개신교계 세미나에서 “단군상의 종교성만을 강조해 역사성마저 부인하는 편협한 자세로 일관하는 것은 개신교 이미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밝힌 적이 있다. 한기총 관계자도 “철거 주장에 힘을 싣기 위해 불가피하게 역사성까지 부인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위기에 처한 개신교계를 올바로 세우기 위해선 단군상 문제를 집요하게 제기하기보다 교회 내부 회개와 갱신에 힘써야 한다는 것이 뜻있는 많은 사람들의 지적이다.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