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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이 천사]'서울母子의 집' 권선희씨

입력 | 2004-02-13 18:46:00

권선희씨가 서울 구로구 궁동 ‘서울 모자의 집’에서 아이들과 함께 신랑 신부 모양의 종이인형을 만들며 작은 기쁨을 전달하고 있다. -이훈구기자


“저를 만나는 순간만큼은 아픈 기억을 잊어버리더군요. 세상을 그렇게 무서워하던 사람들이….”

1남1녀를 둔 평범한 가정주부 권선희씨(44)는 매주 금요일이면 서울 구로구 궁동에 있는 ‘서울 모자(母子)의 집’으로 향한다. 이곳은 가정 폭력을 견디다 못해 집에서 뛰쳐나온 여성들과 그 자녀들이 함께 살고 있는 보호시설.

권씨는 이들에게 4년 전부터 종이접기와 한지공예를 가르쳐왔다.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가득했던 이들은 권씨의 지도에 따라 종이를 접으면서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자녀 교육을 위해 학원에서 종이접기를 배웠던 권씨. 지금은 이 분야에서만 자격증을 세 개나 갖고 있다. 특히 한지공예 지도사 자격증을 갖고 있는 사람은 권씨를 포함해 전국에서 6명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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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예 기술자’인 그가 봉사를 시작한 것은 10년 전인 1995년. 남편의 권유로 참가했던 소년소녀가장 돕기 캠프에서 강의를 하면서부터다.

“제 손동작을 미처 따라하지 못해 안타까워하던 아이들이 완성품을 만들고 난 뒤 환하게 웃는 모습이 잊혀지지 않더군요.”

종이접기도 훌륭한 봉사활동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때 깨달았다.

권씨는 이 캠프를 계기로 1995년 경기 광명시에 있는 ‘하안 복지어린이집’에서 강의하기 시작했다. 그 후 주로 재정형편이 좋지 않은 아동복지시설을 찾아다녔다. 방학이면 자녀들을 동반하기도 했다.

지난해 치매노인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나갔을 때의 일이다. 2시간 남짓 강의를 마치고 나설 무렵 한 할아버지가 권씨의 손을 붙들더니 놓아주지 않았다. 말도 제대로 못하고 기억력도 안 좋은 이 할아버지는 “어버버…”하면서 권씨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여기 와줘서 정말 고맙다”는 뜻이리라는 것을 표정에서 읽을 수 있었다. 권씨는 ‘남을 돕는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하는 생각에 가슴이 찡해 덩달아 눈시울을 붉혔다. 권씨는 “내가 그들에게 꼭 필요한 존재임을 느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10년의 봉사가 있기까지 남편 김석환씨(49·회사원)의 도움이 컸다.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낸 남편 역시 어려운 이웃들에 대한 이해심이 많다. 비록 직장 일로 바쁘긴 하지만 종이접기에 필요한 재료값을 지원해주는 것도 남편이다.

“언젠가는 온 가족이 함께 봉사활동에 나가는 날을 꿈꾸고 있습니다. 남편은 못질을 하고 저는 종이접기를 가르치고 우리 애들은 아기들을 돌보고….”

유재동기자 jarret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