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 등 연금제도 전반에 대한 개혁이 조기에 이뤄지지 않으면 앞으로 연금 재정이 바닥나거나 재정적자가 큰 폭으로 확대되는 등 ‘연금 대란(大亂)’이 발생할 것이라는 경고가 제기됐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15일 ‘인구구조 고령화의 경제적 영향력과 대응과제’ 보고서를 내고 “‘압축 고령화’ 현상을 보이고 있는 한국은 고령화 사회를 준비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부족하다”며 이같이 경고했다.
▽시한폭탄이 된 연금재정=현행 국민연금제도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치지 않으면 현재 110조원을 넘어선 기금이 2046년에는 ‘0원’으로 완전히 바닥날 것으로 보고서는 전망했다.
또 생애평균소득의 60%인 현행 급여율을 계속 유지하려고 하면 현재 소득 대비 9%인 연금보험료율을 18%로 올려도 2058년에는 수지적자가, 2079년에는 기금 고갈이 발생한다는 것.
이미 1999년에 2조7000억원이라는 최대 규모의 적자를 기록한 공무원연금도 현재 정부 보조로 근근이 수지를 맞춰오고 있지만 퇴직공무원이 늘고 있어 적자규모는 계속 늘 것으로 전망됐다.
국민건강보험도 의료비 지출이 많은 노인 인구가 급증함에 따라 2003년 16조원인 지출규모가 2010년에는 27조원, 2020년 56조원, 2030년 106조원 등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KDI는 국민건강보험도 재정균형을 맞추려면 보험료율을 앞으로 8%까지 높여야 한다고 추산했다.
보고서는 또 한국사회보험연구소의 자료를 인용해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군인연금 등 4대 공적연금의 잠재부채가 2002년 말 현재 340조원에 이른다고 밝혔다.
▽‘압축 고령화’의 후유증=아직도 국민소득 1만달러 선에 머물고 있는 한국이 이처럼 ‘조기 선진국병(病)’ 증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출산율 저하에 따른 고령화 속도가 어떤 나라보다도 빠르기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2000년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중이 7%를 넘어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한국은 2019년에는 그 비중이 14%로 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럴 경우 세계 기록이었던 일본 기록(24년)을 5년 정도 앞당기게 되는 것.
▽어떻게 해야 하나=보고서는 ‘저(低)부담-고(高)급여’가 특징인 현행 국민연금제도를 근본적으로 개선하지 않으면 연금재정 고갈 사태를 피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출산율 저하에 따른 노동인구 감소로 수입이 줄고 있는 상황에서 노령화에 따라 지출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
그러나 문제는 이 같은 제도개혁이 쉽지 않다는 점. 정부는 이미 지난해 ‘지금보다 보험료는 더 내고 연금을 덜 받는’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국회에 넘겼지만 총선을 의식한 여야의원들의 반대로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이 같은 제도개혁이 미흡하기는 유럽도 마찬가지. 이미 고령화가 한국보다 앞서 나타난 유럽에서도 제도개혁이 적기에 이뤄지지 못하고 연금재정에 근본적인 문제가 발생한 최근에 이르러서야 뒤늦게 개혁에 시동을 건 상태다.
보고서는 “고령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면서 사회보장 분야의 지출은 크게 늘어날 전망”이라며 “고령화는 ‘미래의 일’이지만 제도개혁이 늦어지면 재정수지가 악화될 뿐 아니라 분배의 형평을 놓고 ‘세대(世代)갈등’으로까지 번질 수 있는 만큼 국민적 합의를 거쳐 조속히 제도개혁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공종식기자 kong@donga.com
신치영기자 higgle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