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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노블리안스]고기정/위기의 이공계 자기변신부터

입력 | 2004-02-15 18:59:00


동아일보는 얼마 전 ‘과학기술이 희망이다’라는 시리즈를 연재했습니다. 이공계(의약 관련은 제외) 위기의 원인과 대안을 모색하자는 취지였습니다. 시리즈를 준비하면서 이공계가 과연 위기인가를 판단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습니다.

대학만 놓고 보면 이공계는 분명히 위기입니다.

200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응시자 가운데 자연계는 20만2000여명(31.5%)으로 인문사회계 34만4000여명(53.5%)보다 훨씬 적습니다.

우수 인력의 이공계 진학률도 하향 추세입니다. 과학기술부에 따르면 2001년 모 명문대에서 이공계 신입생(1444명)에 대해 자체 시험을 실시한 결과 평균 점수는 52.9점, 도저히 수업을 받을 수 없을 것으로 판단되는 30점 미만은 111명이나 됐다고 합니다.

하지만 취업률에서는 위기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2001년 이공계 대졸자 취업률은 57.0%로 인문사회계의 53.4%보다 높습니다. 이공계 취업률이 예전보다 낮아졌다는 주장도 있지만 취업률 저하 현상은 인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부에서는 기업에서 승진이 늦고 공직 진출 기회도 적다고 지적합니다. 실제 30대 그룹 최고경영자(CEO) 중 이공계 비중은 2002년 3월 현재 22.8%입니다.

하지만 이공계와 인문계가 반드시 50 대 50의 비율로 CEO가 돼야 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또 기술직 고위 공무원 수가 적은 것은 이공계 출신이 그만큼 공직 진출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점을 반영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위기가 일찍 왔던 인문계 출신들은 도태되지 않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마흔이 넘어서도 영어회화를 배워야 하고, 영업을 위해서는 ‘꼭지가 돌도록’ 술도 먹어야 합니다.

최근 논의되고 있는 이공계 살리기 방안은 국가 차원에서 발가벗고 도와주는 식입니다. 이에 대한 반발이 없는 건 이공계가 갖고 있는 과학기술을 사장(死藏)시킬 수 없다는 건강한 사회적 합의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이에 앞서 이공계 스스로가 변화하는 모습도 보여줘야 합니다. 대학들이 이공계 위기론을 부르짖고 있지만 제살을 깎으려는 노력이 없다면 어떻게 받아들여질까요.

고기정 경제부기자 ko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