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길상 노동부 차관, 조남홍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 김원배 노사정위원회 상임위원, 김성태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사무총장은 8일 ‘일자리 만들기 사회협약’ 합의안을 이끌어 낸 뒤 카메라를 보며 활짝 웃었다.
협상에 들어간 지 27일 만에 비정규직 차별을 줄이고 고용조정을 자제하며 기업활동 규제를 완화한다는 골자의 합의안을 가까스로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더구나 김대환 신임 노동부 장관과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이 고교 친구 사이인 것으로 드러나 ‘친구끼리 잘해 보지 않겠느냐’는 낙관론도 퍼졌다.
하지만 이처럼 좋았던 분위기는 곧바로 위기를 맞았다. 이헌재 신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11일 “비정규직으로라도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말하자 당장이라도 이 협약이 무효화될 것 같은 험악한 분위기가 조성된 것이다.
14일에는 전 현대중공업 협력업체 직원이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요구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15일엔 한국노총 소속 근로자 5000여명(한국노총 추산)이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요구하고 나섰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사회협약의 골자는 정규직과 임시직의 격차가 줄어든 양질의 일자리(decent job)를 만들자는 것이었는데 이에 대한 정부의 의지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합의 당시 정부에 대한 믿음이 이 부총리의 말 한마디로 무너졌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노동부 노사정책국 노민기 국장은 “‘양질의 일자리를 많이 만들고 이에 더해 임시직도 늘리겠다’는 부총리의 발언이 잘못 전달됐다”고 해명했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2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사회협약’은 정리해고를 주 내용으로 삼았다가 노조와 사용자측이 잇따라 탈퇴해 사실상 무효화된 적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 이번 사회협약은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당국자의 법적 효력이 없는 발언과 친소관계에 따라 일희일비(一喜一悲)할 일이 아니다. 관련 당사자들이 목전의 이해관계보다 멀리 보는 시각을 가져야 모두가 살 수 있다.
나성엽 사회1부 기자 cp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