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총선을 앞두고 시민단체가 벌이는 낙선운동과 당선운동이 한창이다. 시민단체의 이런 정치 지향성은 과연 바람직한 것일까.
17일 발간된 계간 ‘창작과 비평’ 봄호는 기획 ‘시민운동의 현주소를 묻는다’에서 시민운동의 정치 지향이 갖는 의미와 문제점을 짚었다. 시민운동의 대표주자들이 직접 토론에 나선 지상(紙上) 논전 형태의 이 기획에서 눈길을 끈 것은 당선운동에 대한 비판적 견해가 우세했다는 부분이다. 대목별로 견해차를 살펴본다.
▽‘시민단체의 정치참여, 2004 총선전략’=손호철 교수(서강대·정치학)와 ‘총선물갈이연대’ 공동집행위원장인 정대화 교수(상지대·정치학)가 논전을 벌였다. 손 교수는 낙선운동은 국민 대중의 광범위한 지지를 얻을 수 있는 부정부패 척결 과제와 무능하고 반개혁적인 정치인을 배제하자는 최소주의적 요구가 결합한 ‘최소주의적 최대연합’ 운동이라고 비판적 지지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총선물갈이연대’ 등이 펼치는 당선운동은 사실상 특정 정당의 ‘2중대’가 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정 교수는 “어떤 사회운동도 정치적으로 중립적일 수 없고 중립성을 강권하는 수구적 이데올로기 공세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당선운동을 옹호했다. 1990년대 시민운동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던 이유가 80년대 민주화 과정에서 분출한 개혁욕구를 충족시킬 새로운 정치세력의 부재 때문이었다고 분석한 정 교수는 그런 시민운동조차 근본적으로 ‘비(非)정치적이어야 한다’는 틀에 발목이 잡혔다고 분석했다.
▽‘시민단체의 공익성과 이념’=‘바른 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공동대표인 김석준 교수(이화여대·행정학)와 좌파 논객 진중권씨가 토론을 벌였다. 김 교수는 중도우파적 경실련과 중도좌파적 참여연대가 차례로 김영삼 정권, 김대중 정권과 유착했다는 인상을 준 것이 시민단체의 중립성을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노무현 정부 출범과 함께 시민운동이 정치운동으로 전환하면서 “15년 동안 어렵게 성장해 온 시민사회운동의 기반이 균열됐다”고 비판했다.
진씨는 이념성향의 정당과 차별화돼야 한다는 취지에서 시민단체는 보수, 진보의 차이를 뛰어넘는 ‘공공선(善)’의 영역을 다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치권 바깥에서 정치권에 압력을 행사하는 낙선운동의 정당성은 인정할 수 있지만 당선운동의 경우는 ‘이념과 정책이 다른 후보들 중 당선대상자를 가리는 데 적용할 수 있는 통용 가능한 기준이 없다’는 점에서 반대했다. 아울러 그는 ‘바른 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역시 이념성이 강하다고 비판했다.
▽‘풀뿌리운동과 전국적 운동’=유종순 ‘열린사회시민연합’ 공동대표는 ‘시민 없는 시민단체’의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이슈 중심의 활동방식보다는 시민들의 1차적 삶의 터전인 지역사회에서 다양한 시민활동의 토대를 구축해야 한다”며 ‘풀뿌리민주주의’를 주장했다. 차병직 참여연대 집행위원장(변호사)은 ‘시민 없는 시민단체’라는 지적에 대해 “회원이 많고 회비납부 실적이 우수한 시민단체에 결국 시민이 신뢰를 보내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주장했다.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