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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에세이]이용수/답답한 세상, 축구라도 시원하게

입력 | 2004-02-16 19:40:00


“나의 색깔을 충분히 보여주겠다.”

“스피드 축구를 통해 분명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겠다.”

축구 국가대표팀 움베르토 쿠엘류 감독은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각오를 밝혔다. 쿠엘류 감독은 또 “포지션별로 2명의 경쟁을 통해 주전선수를 선정하겠다”고도 했다. 마음씨 좋은 이웃집 아저씨가 아니라 강한 인상의 조련사 모습으로 비치길 바라는 듯한 느낌이었다.

지난해 2월 말 쿠엘류 감독이 대표팀 사령탑을 맡은 뒤 대표팀의 성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선수 개개인을 파악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은 인정되지만 불분명한 목표 설정과 충분치 못한 훈련 시간이 부진의 주요 요인으로 꼽혔다.

장기 목표를 정하지 못한 채 지나치게 눈앞의 경기에 매달리면서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고, 베트남전 및 오만전 패배 이후에는 감독 경질 분위기까지 조성됐다. 축구협회도 2002월드컵 때 전폭적으로 지원하던 것과는 달리 경기 결과를 감독의 탓으로만 돌렸다.

아쉬운 점은 한일월드컵을 치르면서 한 단계 발전된 한국 축구의 성공적 경험을 지속적으로 이어가지 못하고 여러 시행착오를 거친 뒤에 다시 시작하려 한다는 것이다. 더 이상의 여유는 없다. 2006독일월드컵 예선은 18일 레바논과의 경기로 시작되며 아시안컵대회도 6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한 단계 발전된 쿠엘류호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선 우선 단기 목표를 분명히 정해야 한다. 올해 가장 큰 목표는 아시안컵 우승이다. 비교적 약체로 평가되는 레바논, 몰디브, 베트남과의 월드컵 예선은 무난히 통과할 것으로 보이나 아시안컵의 우승을 차지하기까지는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

평가전 및 월드컵 예선경기 일정을 아시안컵에 초점을 맞춘 뒤 대표팀 소집훈련도 계획하고 실행해야 한다. 특히 유럽에서 활약 중인 대표선수들의 소집 일정을 경기 일정과 상대팀 등을 고려해 미리 확정하고 해당 선수들이 소속된 구단들과 협의할 수 있게 해 줘야 한다. 10 대 0으로 이길 수 있는 경기에서 불필요하게 100%의 전력을 소비할 필요는 없다.

쿠엘류 감독을 비롯한 대표팀 코칭스태프는 국내 프로팀 지도자들과 긴밀한 협조 체제를 이뤄야 한다. 대표팀에서 훈련하는 기간은 소속 프로팀에서 훈련하는 기간에 비해 상대적으로 너무 짧다. 선수를 훈련시키는 시간을 많이 가진 프로팀 지도자들과 의견을 교환하며 선수 능력을 극대화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대표팀에서의 선수 활용 의도를 소속팀 지도자와 협의하고 소속팀에서도 그 분야의 훈련에 시간을 할애한다면 짧은 대표팀 훈련시간이 다른 전술 및 조직 훈련에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월드컵 대표선수가 자부심을 갖도록 축구협회는 최고의 지원을 해야 한다. 힘든 경기장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해 모든 것을 쏟아내도록 만드는 원동력은 자부심에서 나온다. 지난 해 오만에서 열린 아시안컵 2차 예산 때 베트남과 오만에 연패를 당했을 당시, 코치들과 대표선수들이 항공기의 이코노미 클래스로 현지에 갔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불법 대선자금 수사, 경기 침체, 조류독감에 광우병 파동까지 겹치며 살맛 안 나는 상황에서 축구만이라도 시원스럽게 우리의 가슴을 위로해 줄 수 있도록 쿠엘류호의 선전을 기대해 본다.

이용수 세종대 교수·KBS 해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