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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재-박해춘, LG카드 살리기 나섰나

입력 | 2004-02-17 15:08:00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연지동에 있는 서울보증보험 박해춘(朴海春·56) 사장 사무실에 이헌재(李憲宰) 경제부총리가 전화를 걸었다.

"접니다."

"야. 너 그거 해결 해."

"뭘 해결합니까?"

"LG카드."

1998년 11월 이헌재 당시 금융감독위원장에게 발탁돼 부실 덩어리인 서울보증보험의 사령탑에 오른지 6년째. 그동안 회사를 살리느라 말로 다하기 어려운 고생을 했다. 이 부총리는 그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가 다시 돌아오자 '이제 나도 폼 나는 자리에 갈 수 있겠다'고 내심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취임한지 열흘도 안돼 또 저를 부르시는군요.(웃음)" (박 사장)

이렇게 LG카드 신임 사장에 내정된 박 사장은 수학과 출신의 보험인이었다. 75년 국제화재에 입사해 98년에는 삼성화재 강북본부장으로 일했다.

"당시 삼성그룹에서 데리고 일할 인력을 '징발'하던 이 금감위장의 전화를 받고 여의도 사무실로 가 TV에서만 보던 그를 처음 만났습니다. 학연도 지연도 없었지만 그렇게 이헌재 사단이 됐습니다." (박 사장)

외환위기를 맞은 서울보증보험의 상황은 심각했다. 보증을 서 주었던 대기업들이 줄줄이 무너지면서 급기야 예금보험공사가 10조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나는 오전 7시에 출근을 할 테니 직원들은 알아서 하라"는 박 사장의 취임 일성에 전 직원들도 '아침형 인간'이 됐다. 자신은 사무실에서 잠을 자는 일이 다반사였다.

강력한 구조조정이 시작됐다. 점포를 절반으로 줄이고 정규직 인원 1784명 가운데 992명을 퇴직시켰다. 직원 대출, 퇴직금 누진제 등 복리후생제도도 없앴다.

그는 99년 6월 삼성자동차 법정관리 당시 친정인 삼성그룹을 끈질기게 추궁해 채권단 가운데 유일하게 9434억원을 받아냈다.

그 결과 취임 당시 1조원 적자였던 회사는 지난해 처음으로 3224억원 흑자를 냈다. 이 부총리는 그 과정을 금감위장과 재경부 장관으로 지켜봤다.

박 사장은 이 장관이 추천했다며 2002년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세계화와 그 불만' 원서를 기자들에게 돌리기도 했고 최근 '이헌재 펀드' 설립에도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박 사장의 임명에 따라 LG카드의 정상화 추진 구조는 근본적으로 바뀔 전망이다. 채권단 관계자는 "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자금 부분을 맡아 뒤로 물러서고 회사의 회생과 구조조정, 매각 등은 중요 현안은 이-박 라인이 맡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LG카드 직원들은 긴장하고 있다. 한 직원은 "회사 정상화를 위해 인력 조정이 불가피하겠지만 박 사장의 임명에 따라 구조조정 강도가 세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 사장은 17일 기자와 만나 "LG카드 회생은 한국 금융시장의 가운데 선 중요한 문제여서 걱정이 앞서지만 98년처럼 겁이 나지는 않는다"며 자심감을 피력했다.

또 "금융은 리스크관리가 생명인데 비해 LG카드는 현금서비스에 수익의 80%를 의존해 시장 변동에 민감하다"며 "우선 실태를 파악하고 처방을 내리겠다"고 했다.

신석호기자 ky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