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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리뷰]‘목포는 항구다’…'바른생활 사나이' 주먹 쥐다

입력 | 2004-02-17 18:51:00

차인표는 `6번째 타석`에서 염원하던 `한방`을 날릴 수 있을까. `목포는 항구다`에서 그는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조폭 두목으로 등장한다. 사진제공 기획시대


“어차피 인생이란 것이 완 타치 아니냐. 완 타치.”

영화 ‘목포는 항구다’에서 입버릇처럼 이렇게 말하는 조폭 두목 백성기의 별명은 ‘유달산 완 타치’다. ‘완 타치’는 한 방에 승부를 건다는 뜻. 공교롭게도 백성기로 출연하는 배우 차인표의 심경을 담아낸 말이기도 하다. 차인표는 유독 영화에선 쓴맛만 봤다. ‘알바트로스’ ‘닥터K’ ‘짱’ ‘아이언 팜’ ‘보리울의 여름’ 등을 통해 ‘줄 삼진’을 당했던 그가 ‘6번째 타석’에서 회심의 한방을 날릴 것인가.

머리는 비상하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는 서울 형사 이수철(조재현)은 목포 최대 조직 성기파 내부의 마약 루트를 알아내기 위해 조직에 잠입한다. 말단 조직원이 된 수철은 성기파의 보물선 탐사사업 유치를 위해 권투시합에 출전한다. 만신창이 승리를 거둔 그는 백성기의 신임을 얻는다. 승승장구하던 수철은 조직 내 2인자인 두호가 순수하고 로맨틱한 성기를 속이고 모종의 음모를 진행 중인 사실을 눈치 챈다.

차인표 조재현을 ‘투 톱’으로 세운 이 조폭 코미디는 두 배우가 가진 기존 이미지를 ‘배반’하는 캐릭터 설정으로 관객의 뒤통수를 친다. ‘바른생활 사나이’ 차인표는 조폭 두목으로, ‘나쁜 남자’ 조재현은 명석하고 연약한 형사로 나오는 것.

그러나 초반부터 숨 가쁠 정도로 몰아치던 이 작품은 코미디에 대한 뿌리 깊은 강박증을 드러낸다. 중견배우 김애경을 그물스타킹 차림의 섹스머신으로 등장시키며 ‘더 웃기게, 더 웃기게’를 되뇐다. 각종 배설물과 동성애도 빠질 수 없다. 에피소드들은 주도면밀하게 통제되었으나 이미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레디메이드(기성품)’의 냄새를 풍긴다. 코미디는 ‘준비된’ 것이어야 하지만, 관객에겐 ‘폭발하듯’ 다가가야 한다. 종반에 접어들며 영화는 액션을 뒤섞은 느와르 드라마로 얼굴을 바꾼다.

차인표는 변신했나? 했다. “겁나게 비싼 보물들을 허벌나게 건져올린다고라” 등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를 비교적 능란하게 구사한다. ‘영구’ 머리에 줄 팬티를 입고 엉덩이를 ‘까는’ 육탄공세도 마다하지 않는다.

차인표의 변신은 성공했나? ‘백성기’라는 조폭보다는 ‘차인표’라는 ‘착한 남자’의 이름이 왠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차인표의 눈빛에 넘치게 담긴 페이소스는 그에겐 신의 축복이자 원죄다.

차인표는 영화 시나리오를 보고 “이 영화 하고 싶다. 꼭 된다. 하지만 그동안의 영화에서 내가 실패했다는 사실 때문에 투자자들이 투자를 꺼린다면 내가 깨끗이 물러나겠다”고 말했다는 후문. 차인표는 정말 ‘항구’ 같은 남자다. 김지훈 감독의 첫 연출작.

20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 가.

이승재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