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작전만 끝나면 보통 사람처럼 살고 싶어 했다. 잘못 든 길을 바로잡으려는 게 그들의 한결같은 소망이었다. … 그들은 우연히 물색요원(브로커)을 만나게 되어 절망을 애국심으로 바꾸고 인생을 다시 시작하기 위해 자신의 운명과 마주선 것이다.” 계간 ‘창작과 비평’ 최근호에서 신대철 시인(국민대 교수)은 북파공작원들에 대해 이렇게 묘사했다. 군 복무 시절 북파공작에 참여한 경험을 가진 시인의 회고에 따르면 북파공작원은 흔히들 상상하듯 섬뜩한 살인병기가 아니다. 그들도 우리처럼 소박한 꿈을 가진 사람들이었을 뿐이다.
▷영화 ‘실미도’가 1000만 관객 돌파를 눈앞에 두면서 ‘잊혀진 존재’였던 북파공작원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우리 현대사의 어두운 그늘을 새롭게 조명하는 것은 긍정적인 일이다. 국방부 자료에 따르면 1950년대 이후 40여년간 양성된 북파공작원은 무려 1만3835명. 이중 7726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됐다고 한다. 베트남전쟁 때 전사한 한국군 5000명을 한참 뛰어넘는 숫자다. 이렇게 많은 생명이 희생된 사안이 그동안 역사의 뒤안길에 숨겨져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하지만 영화를 통해 북파공작원에 대한 호기심을 해소하는 데에는 부작용도 작지 않을 듯싶다. 자칫하면 피해 당사자인 북파공작원에 대해 왜곡된 이미지가 고착화될지 모른다는 게 첫 번째다. 나아가 권위주의 시절의 국가폭력 사례를 ‘픽션’으로 접한 젊은 세대가 민주화 이후의 국가 존재와 기능에 대해서도 무턱대고 부정적인 인상을 쌓을 우려는 없을까.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면 가해자인 국가가 나서는 수밖에 없다. 밝힐 수 있는 건 최대한 밝히고 피해자의 손상된 명예를 회복시켜줘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여전히 문제 해결에 소극적인 듯하다. 정부는 북파공작원 단체들이 수차례 과격 시위를 벌인 뒤인 재작년 10월에야 이들에 대한 보상안을 마련했다. 7000명이 넘는 사망 실종자 중 정부로부터 전사통지서를 받은 가족은 136건에 불과하다. 정부는 ‘민감한 사안’이라며 몸을 사리지만 그렇게 책임을 방기할수록 정부 자체가 국민 마음에서 멀어지는 게 더욱 ‘민감한 사안’ 아니겠는가.
송문홍 논설위원 songm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