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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철칼럼]盧정권 1년 ‘숨은 그림’

입력 | 2004-02-18 19:09:00


취임 1년을 맞는 노무현 대통령의 국정운영능력 평가는 53점이란 보도다. 낙제점이다. 청년실업과 신용불량자 양산으로 대표되는 경제분야가 그렇고, 사회를 양분하다시피 한 ‘코드’인사도 한 예다. 껄끄러워진 한미관계에서 보듯이 외교안보분야도 편치 않다. 그렇다면 대통령은 1년간 해놓은 것이 없지 않느냐고 하겠지만 나는 생각이 다르다. 대통령은 분명히 뭔가 이뤄놓은 것이 있다. ‘숨은 그림’이 있다. ‘숨은 그림 찾기’라면 심심풀이용으로 생각할지 모르나 이건 심심풀이가 아니다.

▼二分法과 ‘코드’ 합작품 ▼

‘반미면 어떠하냐’고 했을 때 보수세력을 포함해 사회가 들끓었다. 그러나 횃불시위 분위기가 되살아나면서 반미와 자주, 민족공조는 유기적으로 뒤섞여 오히려 범위를 넓혔다. ‘친북좌경’ 세력 확산을 우려하는 사람들이 주목하는 것도 이 혼재 현상이다. 대통령 당선에 공을 세운 ‘노사모’는 활동의 불법 시비가 잇따랐지만, 대통령은 요지부동, 집요하게 격려를 보냈고 어느 행사에선 ‘시민혁명’ 구호가 나오게까지 됐다. 총선전선에 나선 ‘국민참여0415’가 그 화답이다. 대통령후보로 밀어준 민주당을 탈당하면서 열린우리당이 새로 문을 열었다. 대통령이 우리당 창당에 관여한 바 없다는 말을 이제 또 한다면 소가 웃는다. 장관과 청와대 참모진의 무더기 ‘우리당 후보 총선 앞으로’를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이뿐 아니다. 대선 때부터 대통령은 몇몇 주요 신문에 대해 대립각을 세웠고 선을 그었다. 이어 대통령은 일부 신문과 방송에 대한 호오(好惡)를 분명히 함으로써 언론계도 갈렸다. 이들 작업은 아직 계속되고 있다.

이제 ‘숨은 그림’을 찾아보자. ‘반미’ ‘시민혁명’ ‘탈당’ ‘언론분리’가 시사하는 것은 정상적인 기준에서 볼 때, 통합을 대선구호로 내건 대통령의 언동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건곤일척 무리수를 뒀다. 왠가. 비주류 대통령에겐 지지세력 구축이 무엇보다 시급했다. 사회적 논란을 일으켜 기존체제에 대한 불만을 껴안으며 논쟁의 절반을 지지세력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이들은 ‘숨은 그림’처럼 분야별로 흩어져 있었지만 맞춰놓고 보니 지향점은 같았다. ‘친노’ 네트워크다. 지난 1년간 대통령이 이룬 성취가 이들 지지세력의 규합이다. 회유와 위협이 있었다고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코드’다. 이것이 오늘 한국사회의 뿌리를 흔들고 있는 이념적 로드맵이다.

▼권력의 축엔 변함없다 ▼

그런데 대통령의 발목을 잡는 것이 있다. 바로 국정 난조다. 그도 그럴 것이 최고지도자가 ‘총선 올인’ 궁리에 몰두하니 국정이 제대로 굴러갈 수 있었겠는가. 게다가 ‘코드’인사들의 비전문성 때문에 국정은 매끈하게 처리되지 못하고 질척거렸다. 보수성향 인사와 전직 관료를 기용하는 최근 대통령의 장관 및 청와대 인선을 놓고 ‘의미 있는 변화’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국정 혼선의 정리와 수선이 급해진 대통령이 택한 것은 이들의 행정경험과 전문성이지 이념적 신조가 아니다. 스스로를 실용주의자라 했듯이 실용적 원용(援用)일 뿐이다. 이들의 활동이 과연 테크노크라트의 한계를 벗어날 수 있겠는가. 취임 일성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신선한 느낌도 주지만 이들이 과연 대통령과 핵심적 권력운영을 얼마나 깊이 논의했겠는가. 한마디로 권력의 축은 변하지 않았다. 지난 1년간 대통령이 심혈을 기울여 구축해 온 지지세력이 누구인가를 살펴본다면 더욱 분명해진다. ‘숨은 그림’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코드’인사들이 청와대와 내각을 떠났다고는 하나, 오히려 그것은 총선 현장 등 정치 일선의 전진 재배치다. 대통령의 이념적 지지세력은 엄존해 있다.

대통령으로선 성취했다지만 낙제점 국정과 무너진 사회통합의 희생은 크다. 참여정부를 표방하면서 사회를 갈라놓았으니 두고두고 미칠 참담한 여파를 생각하면 이런 소탐대실이 없다. 이번 총선엔 이런 권력행태에 대한 찬반투표의 의미가 크다. 자신의 정치세력 결집을 위해서라지만 국론이 둘로 갈린 것에 대한 심판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최규철 논설주간 kih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