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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농구]"농구를 키로만 하나요"…프로농구 최단신 1m68 이항범

입력 | 2004-02-19 17:58:00

먹시 보그스는 1m60의 작은 키로 미국 프로농구를 주름잡았다. 한국에도 ‘보그스의 꿈’을 키우는 선수가 있다. 길거리농구 출신의 이항범. KCC에 입단한 그는 “올해 농구를 위해 내 인생을 ‘올인’하겠다”고 다짐한다. 용인=박영대기자


프로농구 KCC 체육관에 가면 다른 선수보다 머리 하나는 작은 ‘꼬마 선수’가 있다.

이항범(24·1m68). 10개 구단을 통틀어 가장 키 작은 선수가 바로 그다. 요즘 웬만한 농구선수라면 1m90이 훌쩍 넘기 마련. 그런 장대 숲에서 그를 찾기란 쉽지 않다.

“농구를 키로 하나요? 1m60의 먹시 보그스도 미국 프로농구에서 뛰었잖아요. 나는 보그스보다 훨씬 더 커요.”

보그스는 2001년 토론토 랩터스에서 은퇴할 때까지 889경기에 출전해 경기당 8.8득점, 7.6어시스트, 2.6리바운드, 0.54스틸을 기록한 ‘땅꼬마 농구’의 희망. 이항범은 “농구는 타이밍이다. 2m대 센터를 달고도 얼마든지 드라이브인할 수 있다”며 자신만만해 한다.

그는 아직 예비선수. 이달 초 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4순위(전체 14순위)로 지명돼 다음 시즌부터나 뛸 수 있다. 그렇기에 팀훈련 때도 골밑에 서 있다가 튄 공이나 빗나간 공을 잡아 선배들에게 건네주는 게 주 임무.

그렇다고 훈련을 하지 않는 게 아니다. 전주 홈경기 땐 숙소인 리베라호텔에서 경기장인 전주실내체육관까지 4km를 혼자 뛰어 간다. 돌아올 때도 마찬가지. 최근 LG와의 창원 원정경기 땐 숙소인 드래곤호텔에서 창원실내체육관까지 뛴 적도 있다.

멀리서 본 그의 모습은 흑인을 연상케 한다. 껌을 질겅질겅 씹고 빡빡머리에 얼굴도 새카맣다. 힙합을 즐겨 듣는가 하면 걸음걸이마저 힙합스타일이다.

“흑인이었으면 하고 생각한 적도 있었어요. 농구를 더 잘할 수 있었을 테니까요. 흑인선수들은 탄력이 좋잖아요.”

머리는 5년 전부터 사흘마다 한 번씩 혼자 민다. 그래서 머리 길이가 항상 2mm. 머리가 길면 답답하기 때문이란다.

이항범의 경력은 특이하다. 7세 때 처음 농구공을 잡은 뒤 여의도중학교 2년 때 길거리 농구대회에 나갔다가 눈에 띄어 홍익대부속중으로 전학. 홍익대부속고를 거쳐 성균관대 입학이 확정됐다가 꽉 짜인 생활이 싫어 뛰쳐나왔다. 밤이면 동네 공원에서 농구공 튀기기를 2년. 거의 ‘백수’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다가 2001년 군에 입대했다.

“군 복무 시절 틈만 나면 팔굽혀펴기와 역기로 웨이트트레이닝을 했습니다. 어쩌다 휴가 나와 공을 잡으면 손바닥의 감각세포가 일제히 살아나 미칠 것 같더라고요.”

농구는 키의 스포츠. 키가 작은 치명적인 핸디캡을 갖고도 그는 왜 농구선수를 지망했을까.

“농구공만 들고 있으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어요. 다른 친구들은 컴퓨터 게임에 빠져있지만 전 스타크래프트도 못합니다. 그런 거 하기에는 시간이 아깝거든요.”

그가 KCC에 뽑힌 것을 두고 의아해 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신선우 KCC 감독의 얘기는 다르다. “항범이가 잠깐 성균관대에 몸담았던 시절 연습게임을 여러 차례 했는데 농구감각이 타고난 선수라는 인상을 받았다”는 게 그의 평가.

“지금 내 농구 수준은 형편없습니다. 감독님이 나의 가능성만 보고 뽑아줬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첫 시즌에 뭔가 보여주지 못하면 퇴출되겠지요. 올 한해에 내 인생을 ‘올인’해 보겠습니다.”

17년간 품어온 한국판 ‘보그스의 꿈’. 우리 모두 그 꿈이 이뤄지길 기대해 보자.

전주=김화성기자 mars@donga.com

▼이항범은 누구?▼

·생년월일=1980년 9월 6일

·신체=키 1m68, 신발 285mm

·경력=여의도중 2학년때 나이키배 길

거리농구대회 4강까지 올라 홍익대

부속중에 스카우트됨. 99년 2월 홍익

대부속고 졸업(고교 경기당 평균 23

득점). 98년 12월∼99년 2월 성균관대

가입학 동계훈련. 2001년 5월∼2003

년 7월 육군 포병부대 행정반 근무

·취미=음악 감상

·좋아하는 선수=마이클 조던, 이상민

·농구관=‘슬로 슬로 퀵’식의 템포농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