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티은행의 한미은행 인수가 이뤄지면 국내 금융권은 대규모 지각변동을 겪게 될 전망이다.
외환위기 이후 은행들은 ‘덩치 키우기’ 경쟁을 벌이며 몸집을 키웠지만 영업기법 등에선 큰 진전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평이다. 이런 상황에서 ‘거대 씨티은행’은 국내 금융시장에 ‘고객 서비스와 상품의 질’이라는 새로운 게임의 룰을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양에서 질의 경쟁으로 바뀐다=합병을 통해 태어날 씨티은행 한국지점의 총자산은 67조원이다. 반면 국민은행의 총자산은 214조8000억원이고 신한+조흥(147조4000억원) 우리(119조2751억원) 하나(91조8000억원) 순으로 모두 씨티은행보다 덩치가 크다.
하지만 은행이 덩치로 먹고살던 시대는 지났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부유층 고객의 자산을 얼마나 잘 관리해 주는지가 갈수록 중요한 요소라는 것. 씨티은행은 해외 펀드 등 다양한 선진 금융상품과 운용 경험을 통해 이 분야에 강점이 있다.
한국금융연구원 구본성(具本星) 연구위원은 “씨티은행은 수익 극대화를 중요시해 수익을 올려주는 상위 20% 부유층 고객을 공략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래에셋증권 한정태(韓丁太) 연구원도 “씨티은행은 고객 자산운용에 필요한 지식과 수단으로 무장하고 있어 프라이빗뱅킹(PB) 분야에 강점이 있다”고 말했다.
과거 은행고객은 직원과의 ‘관계’ 때문에 거래를 했지만 미래의 고객은 서비스의 질에 따라 쉽게 이동한다는 점도 국내 은행들의 걱정거리다.
국내 은행이 질 경쟁에서 지면 가격을 내려 고객을 잡아야 하고 결국 ‘제 닭 잡아먹기’식 과당 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금융계 지각변동=씨티은행과 함께 한국 은행시장에 눈독을 들이던 HSBC는 다소 급한 처지가 됐다. 금융계 관계자는 “한미가 씨티로 넘어갔다면 HSBC는 제일은행 지분 인수에 주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대해 제일은행의 대주주인 뉴브리지캐피털코리아 박병무(朴炳武) 사장은 “현재로선 지분을 팔 생각이 없고 특히 HSBC와는 특별히 말할 내용이 없다”고 했다.
국내 ‘Big4’ 은행 가운데 가장 자산 규모가 작은 하나은행은 당장 카드와 증권 부문을 강화하기로 했다.국내 대형 은행 중에서는 하나은행이 가장 편치 않다. 하나은행은 국민 신한+조흥 우리보다 덩치가 작아 힘겨운 경쟁을 해야 한다. 규모의 경제를 누리려는 중소 은행들도 조만간 합병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씨티은행 한국지점은 현재까지 삼성투신운용 LG투신운용 프랭클린템플턴 피델리티 등 국내외 7개 자산운용사의 펀드를 팔아 판매수수료를 받아왔다. 한미은행 인수에 따라 펀드 판매가 늘어나면 운용수수료를 벌기 위해 운용전문 자회사를 설립할 가능성도 크다.
최홍(崔鴻) 랜드마크투신운용 사장은 “씨티은행이 고급 인력과 선진 운용기법을 활용하면 자산운용업계 판도도 변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대형 은행 실적 및 규모 국민신한+조흥우리하나씨티+한미총자산(원)214조8000억147조4000억119조2751억91조8000억67조충당금적립 전 이익(원)4조5315억2조4242억2조1703억1조3910억6776억
당기순이익(원)-6118억-4898억1조3322억5172억882억지점(개)1154909690575237인원(명)1만95001만12191만22469944176씨티은행 실적은 2003년 1~9월 누적치. 나머지는 2003년 결산 실적. 충당금적립 전 이익은 당기순이익에 대손충당금과 법인세를 더한 금액. 자료:각 은행
신석호기자 kyle@donga.com
김창원기자 chang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