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터넷에서 두 가지가 유행하고 있다. 하나는 ‘짱’이고 다른 하나는 군중을 뜻하는 ‘몹(mob)’이다. 인터넷의 영향력이 워낙 전방위적이다 보니 정치 역시 이러한 추세에서 예외일 수 없다. 하여 정치에서도 ‘짱’ 신드롬과 ‘몹’ 신드롬이 번질 기세인데, 두 가지가 만났을 때 그 결과가 실로 우려스럽다.
▼스타일-이미지에 기대는 정치 ▼
‘짱’이란 본래 10대들의 은어였다. 그것은 또래에서 가장 싸움을 잘하는 아이를 ‘일짱’이라고 부르는 데서 유래했다. 그런데 최근에는 인터넷을 통해 ‘얼짱’ ‘몸짱’ ‘강짱(강도 얼짱)’ 등이 유행하더니 드디어 정치판에서도 ‘짱’을 찾기에 이르렀다. 정치에서 ‘짱’의 원조는 노무현 대통령이다. 노사모로 대표되는 노 대통령 지지자들이 후보시절부터 그를 자신들의 대장이라는 의미에서 ‘노짱’이라 불렀다. 하지만 최근 정치판에 불어 닥친 ‘짱’ 신드롬은 다분히 ‘얼짱’ 신드롬과 관련이 깊다. 단지 얼굴이 예쁘거나 이미지가 참신하다든지 또는 방송매체에 자주 등장했다는 이유만으로 일약 정치인으로 발탁되는 경향이 많기 때문이다.
버지니아 포스트렐은 작년에 낸 책에서 21세기를 ‘스타일의 시대’라고 단언했다. 기술발달로 인해 이제 제품 사이의 성능의 차이는 별로 중요치 않게 되었다. 따라서 사람들은 상품을 고를 때 ‘보고 느끼는’ 미적 기준, 즉 스타일에 근거해 결정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 점은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스타일은 사람들이 자기만의 ‘미적 정체성(aesthetic identity)’을 표현하는 수단이 되기 때문에 인간관계에서 스타일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에 기대어 본다면 정치판의 ‘얼짱’ 신드롬은 시대 추세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정치가 스타일이나 이미지에만 기댈 수는 없는 일. ‘짱’ 신드롬의 가장 큰 맹점은 이미지만 있고 실체가 없다는 것이다. 그가 어떤 활동을 해왔으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고, 잠재성이 어느 정도인가 등은 고려될 여지가 별로 없다. 오로지 이미지, 그것도 있는 그대로라기보다는 방송이나 인터넷 매체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연출되고 가공된 이미지만이 정치소비자인 유권자의 감성을 자극하고 있다.
또 하나 온라인을 통해 퍼져가고 있는 신드롬이 ‘몹’이다. 특히 서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e메일이나 휴대전화를 통해 시간과 장소를 정한 후 일시에 모여 어떤 퍼포먼스를 벌이고는 금세 사라지는 ‘플래시 몹(flash mob)’이 네티즌 사이에서 유행이다. 이들이 추구하는 목적은 ‘재미’ 그 자체다. 자신들의 행위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것 자체를 이들은 거부하고 있다.
‘몹’ 즉 군중이란 본시 부정적이고 수동적 의미를 지닌 말이다. 군중은 역사의 주체라기보다는 지배층의 상징조작의 대상이었으며, 대량소비사회의 부속품으로서 원자화된 상태에서 고독과 무력감을 느끼는 존재였다. 그런데 하워드 라인골드는 이러한 군중이 인터넷과 휴대전화로 무장하면서 똑똑해졌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인터넷을 통해 모은 정보를 집단적으로 조직화하고 공통된 관심사를 찾아내 서로간의 교신을 통해 쉽게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적극적인 주체로 변했다. 이른바 ‘스마트 몹(smart mobs)’의 탄생이다. 그러나 라인골드는 군중이 아무 생각 없이 휴대전화로 문자메시지나 주고받는 ‘엄지족(thumb tribe)’에 머무를 가능성에 대해서도 경고하면서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그들만의 생각’을 지닌 ‘몹’이 탄생해야 한다고 했다.
▼재미만 찾는 ‘플래시 몹’ 열풍 ▼
최근 우리 사회의 ‘플래시 몹’ 열풍은 단순 재미만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스마트 몹’보다 ‘엄지족’의 행동에 가깝다. 감각적 재미만을 찾는 ‘엄지족’과 실체는 없고 이미지만 추구하는 ‘짱’ 정치인이 만날 때 한국 정치의 앞날을 어떻게 될까. 인터넷 없이 살 수 없는 세상이 되었지만, 인터넷 정치의 앞날은 반드시 밝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김일영 객원 논설위원·성균관대 교수·정치학 iykim@skku.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