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한기자scoopjyh@donga.com
밤늦게까지 컴퓨터 앞에 달라붙어 있는 아이. 온라인 게임에 필요한 ‘무기’가 바닥났다며 우울한 표정이다. 자판을 열심히 두드리기에 살짝 엿보았더니 ‘&자’ ‘방법하자’ 등 짐작도 할 수 없는 말이 가득하다. 이게 어디서 느닷없이 튀어나온 ‘외계인’일까. 걱정할 필요는 없는 걸까.
“어느 시대에나 ‘괴짜’는 존재해 왔습니다. ‘사이버 신인류’란, 웹 공간 속에서 새로운 행동의 자유를 얻게 된 ‘괴짜’들일 뿐이죠.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거북하게 느낄 필요는 없어요. 오히려 이들이 가진 창의력의 가능성에 주목해 볼 수 있겠죠.”
‘대한민국 사이버 신인류’(21세기북스)를 쓴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사진)의 얘기다. 이 책에서 그는 폐인, 사이버 정체성, 아바타, 게임 아이템 등 인터넷 공간에서의 새로운 현상들을 심리학적 틀로 들여다보고 있다. 왜 ‘사이버 세상의 심리학’이 필요한 걸까.
“우리나라가 사이버 강국이 되었다고 하지만 마치 산업공단을 만들 듯 하드웨어부터 해치워버렸죠. 반면 그 공간 속에서 일어나는 인간의 행동과 다양한 사회문제에 대해서는 ‘조선시대’ 수준의 사고방식에 머물러 있어요.”
기성세대는 현실세계의 틀로 자꾸만 사이버 공간을 들여다보려 하고, 이는 결국 웹 세상에 대한 잘못된 처방, 그릇된 개입을 낳는다는 것. 기성세대의 오해가 낳은 잘못된 인식의 하나로 황 교수는 사이버 공간의 ‘익명성’ 문제를 들었다.
“인터넷 세상에서는 정체가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일탈적 행동을 한다고들 하죠. 그러나 실제로 사이버 공간에서 사람들은 오히려 스스로를 드러내려 노력해요. 현실공간과 비교해 자신을 드러내는 방법에 차이가 있을 뿐이죠. 사이버 공간의 욕쟁이가 과연 현실세계에서는 욕을 하지 않을까요?”
책에서 그는 새로운 사이버 세대를 ‘네버랜드를 찾아가는 동화 피터팬 속의 웬디’에 비유한다.
“상상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네버랜드는 실재하지만, 상상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세계죠. 심리학적으로 볼 때 사이버 공간은 ‘심리적 실체’입니다. 그들의 꿈을, 현실을 위협하는 백일몽이 아니라, 새롭게 존재하는 기회의 세계로 보면 어떨까요.”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