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자연과학]'마음을 과학한다'…"내 마음 나도 몰라"

입력 | 2004-02-20 17:25:00

오랜 철학적 질문인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6명의 자연과학자들이 해답을 모색했다.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는 1947년작 ‘해방자’에서 성직자가 마음에 간직해야 할 덕목들을 형상화해 가슴에 그렸다.동아일보 자료사진


◇마음을 과학한다/카렌 N 샤노어 외 지음 변경옥 옮김/408쪽 1만2000원 나무심는사람

화성에 탐사선을 보내고 인간을 복제해 낼 수 있는 과학기술력을 갖추게 됐지만, 우리는 정작 우리 마음이 있는 건지 분명히 말할 수 없다. 친구와 논쟁을 하는 상황에서 한쪽이 “네가 날 알아?”라고 말해 버리면 논쟁은 끝이다. 이야기가 과학적으로 논증할 수 없는 사적(私的) 영역으로 들어가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말을 듣고 말싸움에서 졌다고 물러서기는 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든다.

인지심리학, 정신병리학, 심신의학, 그리고 꿈과 뇌에 대한 전문가 6인이 쓴 이 책을 읽으면 “그런 너는 널 알아?”라고 되받아칠 수가 있다. 이 전문가들은 마지막 미개척지라고 불리는 인간의 뇌에 대한 최근의 과학적 탐구결과를 토대로 마음에 대한 재미있고 유익한 이야기들을 풀어놓는다.

뇌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대체로 인간의 마음이 두뇌와는 별개로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 책의 저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두뇌가 곧 마음이라는 유물론적 생각에 동의하는 것도 아니다. 이들은 물질과 정신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양자역학적 차원에서 인간의 두뇌를 바라보면 마음의 정체에 대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 책의 원제가 ‘The Emerging Mind’인 이유는 이들이 미시적 두뇌의 작용 속에서 우리의 마음이 출현한다(emerge)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이 그렇게 심오한 것이기 때문에 우주소년 아톰같이 인간과 유사한 감정을 느끼고 인간을 사랑하는 로봇의 등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인지심리학자인 샤노어는 시(視)지각이 상실된 상태에서도 눈앞의 형상을 감지하는 맹시(盲視·blindsight)의 예를 들어 마음에 숨은 관찰자의 역할이 있다고 주장한다. 아무리 뛰어난 인공지능을 갖춘 로봇이라 하더라도 그런 능력을 갖게 되지는 못할 것이다.

‘아이덴티티’라는 영화에는 다중인격장애를 겪는 환자가 연쇄살인범으로 등장한다. 그 환자 속에 있는 어떤 한 인격이 살인을 저지른 것이라면 다른 인격상태에 있는 그 환자는 범인인가 아닌가 하는 물음이 제기되는데, 정신병리학자인 퍼트남은 다중인격장애의 다양한 사례들을 소개하면서 일반인들도 정신상태에 따라 정체성이 다르게 구성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

양자역학과 인도의 고대 경전인 베다를 결합시킴으로써 인간을 새롭게 보려고 하는 심신의학자 초프라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진정한 당신’은 똑같은 뼈와 살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호흡이라는 단순한 행위를 통해 우리는 엄청난 양의 원자를 들이마시고 내뱉기 때문에 우리의 물리적 몸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간디, 예수, 사담 후세인 등의 몸을 구성했던 원자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초프라는 베다를 인용해 우리의 몸이 우리의 기억과 꿈이 머무는 집일 뿐이라고 말한다.

이쯤 되면 두뇌에 대한 과학적 탐구에서 시작한 이들의 마음 탐색은 점차 어떤 신비스러운 힘을 추구하는 과정이 된다. 심신의학자인 스펜서는 플라세보(위약·僞藥)처방을 통해 전립샘 환자의 30∼40%가 완치된 사례를 소개하고, 샤노어는 최면요법을 통해 여성의 가슴을 확대시키는 데 성공한 사례를 소개한다.

요컨대 이들의 공통된 주장은 긍정적인 마음을 가짐으로써 우리의 삶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철학적 문제를 건드리면서도 흥미 있는 과학적 사례를 통해 시종일관 재미있게 읽히는 이 책은 특히 심신의 조화를 꾀하는 웰빙족이라면 한번 읽어봄직하다.

이유선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서양철학

yusunle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