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의 마음/하이타니 겐지로 글 햇살과나무꾼 옮김/272쪽 8500원 양철북
방학이라 집에서 책만 읽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렇게 책을 읽다가 내 마음속 선생님으로 모실 임길택, 하이타니 겐지로 두 분을 만났다. 교사로서의 삶과 글쓰기를 함께 하셨던 두 분의 책을 읽으며 힘을 얻었으니 나로서는 연수와 공부 못지않게 재충전을 한 셈이다.
두 분을 3월 새로 만나는 아이들에게도 소개할 생각이다. 그 목록의 맨 앞자리에 하이타니의 소설 ‘소녀의 마음’이 있다.
작가의 전작들이 꾸준하게 교육적 실천에 닿아 있었다면 이 책은 조금 별다르다. 이혼한 가정에서 엄마와 아빠 사이를 오가는 중학교 3학년 여학생 가스리의 시선을 따라가며 가정이라는 이름으로 통칭되는 관계를 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행복한 가정을 한 꺼풀 들추면 얼마나 불평등한 관계가 존재하는가. 그저 한 집에 살 뿐 서로에게 상처만 주는 관계도 있고, 가족끼리 의사소통하는 법을 몰라서 때로는 소유물처럼, 때로는 불편한 등짐처럼 함부로 대할 때가 많다. 에리히 케스트너의 말을 빌리면 ‘세상에는 부모가 헤어져서 불행한 아이만큼이나 부모가 헤어지지 않음으로써 불행한 아이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외동딸 가스리의 부모는 이혼을 했다. 엄마와 아빠는 서로 맞지 않는 구석을 인정하고 따로 산다. 이혼을 하고서도 따로 또 같이 잘 지내는 가족이 드문 현실 속에서 서로 존중하는 마음을 잃지 않는 가스리의 엄마와 아빠는 현대의 새로운 가족 모습이다. 그리고 가스리의 남자친구 우에노 주변 사람들이 이루는 가족의 모습 또한 신선하다. 신경증을 앓으며 몇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던 나쓰코를 챙겨 주는 우에노나, 난봉꾼인 남편이 다른 곳에서 데려온 아이를 씩씩하게 키우는 아줌마는 가족 본래의 보살핌과 배려를 보여준다. 가족이기주의를 넘어서 서로를 애틋한 눈길로 바라보고 인정하는 모습이 따뜻하게 남는 책이었다.
이 책을 읽고 우리 아이들이 생각난 것은 무엇보다도 자립적인 인간으로서 성숙한 아이들을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자신의 편견이나 취향으로 남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지 않는 성숙한 시선을 지닌 소년과 소녀를 알려주고 싶었다. 집을 나갔다가 돌아온 고양이 차푸를 보고 소녀는 엄마에게 이렇게 말한다.
“엄마는 내가 차푸한테 쌀쌀맞게 군다고 뭐라 하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야. 자기의 소유물처럼 귀여워하지 말자고 생각한 것뿐이야. 차푸가 나에게 알랑거리면 그러지 말라고 하는 것뿐이라고. 안 그러면 우리 사이는 평등하지 않으니까.’
우리 아이들이 소녀의 마음을 따라가며 읽다가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모습도 곰곰 따져 보기 바란다. 또 하나, 이 책은 대화체로 술술 읽힌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문체가 좋다고 하면서도 느낌 외에는 뭐가 좋은지 잘 모르겠다는 아이들에게, 당돌하면서도 진정 어린 소녀 가스리를 소개한다.
서미선 서울 구룡중 국어교사·
책으로 따뜻한 세상 만드는 교사모임 회원
정은령기자 ry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