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용 詩 126편 다시 읽기/권영민 지음/768쪽 2만8000원 민음사
‘향수’의 시인 정지용(鄭芝溶·1902∼?)의 시를 새롭게 읽고 분석한 해설서다. 서울대 국문과 교수인 저자는 “30년 전 대학 시절 비 내리는 서울 청계천 헌책방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당시로선 금서인 정지용 시집 ‘백록담’이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며 “싹싹 빌다시피 해서 구하고 나서는 너무 기뻐 빗속을 뛰어다녔다”고 회고한다.
저자는 큰 애정을 밑바탕으로 삼아 정지용이 남긴 모든 시의 원문과 개작 과정 등을 꼼꼼히 비교했으며, 주석과 해설을 붙였다. 이 가운데 정지용의 시어가 잘못 이해되고 있다고 지적한 34가지 사례가 눈길을 끈다.
“말아, 다락같은 말아,/너는 즘잔도 하다 마는/너는 웨그리 슬퍼 뵈니?”(‘말’ 중)에서 ‘다락같은’은 ‘덩치가 크다’는 뜻이라고 글쓴이는 본다. 어떤 학자는 ‘물건을 두기 위해 이층처럼 만들어 놓은 곳 같은’이라고 해석했다.
또한 시 ‘향수’ 가운데 ‘얼룩백이 황소가/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에서 ‘해설피’는 ‘해+설핏하다’에서 변형된 형용사로 ‘해가 져 밝은 빛이 약하다’는 뜻을 가졌다고 주장했다. ‘해설피’는 그동안 ‘구슬프게’ ‘어설프게’ 등으로 이해돼 왔다.
정지용의 서정시들은 동양적 자연의 발견이라는 면과 모던한 이미지즘의 구현이라는 점에서 두드러진다. 감정을 절제하고, 언어를 섬세하게 다듬었다는 미덕으로 널리 사랑 받아 왔다. ‘정지용 시 126편 다시 읽기’는 이 같은 미덕에 이끌린 중진 국문학자의 정지용 시 정본화(定本化)라고 할 수 있다.
권기태기자 kk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