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지인 3명과 함께 덕유산을 찾았다. 영각사에서 출발해 남덕유산을 오르는 코스를 택했다. 덕유산 자체가 주는 무게감과 설경, 눈꽃 그리고 끊임없이 내리는 눈은 자연이 내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었다. 참으로 행복했다.
그러나 산길 곳곳에서 목격되는 무질서가 기분을 상하게 했다. 바위 틈새에 숨겨 놓은 비닐봉투, 곳곳에 널린 과일 껍질과 음식물 찌꺼기, 보란 듯이 나뭇가지에 ‘예쁘게’ 꽂아놓은 페트병, 소주병과 맥주 캔, 담배꽁초….
한 30분쯤 올랐을까. 한 무리의 등산객이 대담하게도 굵은 통나무를 모아 장작불을 지펴가면서 취사를 하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은 우리에게 큰소리로 웃으면서 “추운데 불 좀 쬐고 가라”며 ‘친절’까지 베풀었다. 국립공원 내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조금 더 가서 또 한 무리를 만났다. 그중 한 아주머니가 신문지를 펼쳐 놓고 배와 귤 껍질을 싸고 있었다. 가지고 가려나보다 했더니 웬걸, 뒤편 산비탈로 홱 던져버렸다. 화가 치밀었다. 더구나 그 아주머니는 자리를 뜨면서 물이 3분의 2가량 남아 있는 페트병을 그대로 놓고 가는 것이었다.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물병 가져가시죠”라고 했더니 “지나가는 다른 사람들이 마실 수 있잖아요”라고 했다. 내가 다시 “아주머니 같으면 아무렇게나 버려진 물을 그냥 마시겠습니까”라고 했더니 그제야 못마땅한 듯 페트병을 집어 들었다.
의식이 없는 것이다. 나는 ‘자연은 우리 것이 아니라 후손에게서 잠시 빌려온 것’이라는 말이 참으로 절묘하다고 생각한다. 음식들이 담긴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산에 오르기도 했으면서 하산 길에 빈 껍질을 되가지고 가는 게 무에 그리 어렵단 말인가. 후손들 보기에 답답한 일이다.
남정선 월간 ‘헤드라인 뉴스’ 근무·서울 성북구 성북2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