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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이 천사]무료급식 11년째 이광희씨

입력 | 2004-02-20 18:55:00

중국음식점을 운영하며 10여년째 복지시설 등에 무료급식을 제공하는 이광희씨. -울산=정재락기자


“11년을 한결같이 중국음식을 무료로 나눠주니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19일 낮 12시경 울산 남구 달동 남구사회복지관.

중국음식점을 운영하는 이광희(李光熙·39·울산 남구 삼산동)씨가 나눠주는 따끈한 우동을 한 그릇씩 받아든 노인과 장애인들은 이씨의 손을 꼭 잡고 연방 고마움을 표시했다. 이곳은 50세 이상 장애인과 60세 이상 노인 등 200여명에게 매일 점심을 제공하는 무료급식소.

이들에게 제공되는 우동은 이씨가 요리 기구와 음식 재료를 챙겨 와 주방에서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직접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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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가 무료급식을 하는 곳은 여기만이 아니다. 울산 울주군 상북면의 장애인 복지시설인 애리원과 경남 양산시의 노인 복지시설인 통도사 자비원, 울산 남구 삼산동의 제2경로당, 남구 신정동의 시각장애인연합회, 남구 무거동의 보육원인 울산양육원 등 5곳이 더 있다.

한 곳의 무료급식 인원이 적게는 30명에서 많게는 200명이나 돼 음식 재료비로만 월 100만원이 든다.

이씨가 무료급식을 실시한 것은 1993년부터. 강원 원주시의 산골에서 2남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이씨는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옥수수밥조차 먹을 수 없어 자주 굶었다.

어려서부터 배고픈 경험을 뼈저리게 한 이씨는 ‘허기만은 면해 보자’는 생각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원주시내의 중국음식점에 취직했다. 식당일을 하면서 이씨는 ‘내가 식당을 열면 가장 먼저 배고픈 사람에게 무료로 음식을 나눠 주겠다’고 다짐했다.

10여년간 요리법을 배운 이씨는 1993년 3월 꿈에 그리던 중국음식점을 동생과 고모가 살고 있는 울산에서 개업했다.

개업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두 달 뒤 어린이날에 울산양육원생 90여명에게 자장면과 탕수육을 만들어 나눠준 것.

이씨는 “어린이들이 자장면을 먹는 모습을 보면서 배고팠던 어릴 때의 기억이 떠올라 한참 울었다”고 말했다. 이때부터 이씨는 다른 복지시설을 찾아다니며 무료급식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 무료급식을 할 때는 부인 김선화(金善花·35)씨의 반대가 만만찮았으나 이제는 무료급식을 가는 날이면 요리 기구와 음식 재료를 꼼꼼히 챙겨주는 가장 든든한 후원자가 됐다.

이씨는 장기간의 무료급식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10월 울산시민의 날에 박맹우(朴孟雨) 시장으로부터 시민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씨는 “내가 가진 기술로 허기진 사람들의 배를 채워줄 수 있어 뿌듯하고 무료급식일이 기다려진다”며 활짝 웃었다.

울산=정재락기자 rak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