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대문구 신촌 일대는 요즘 봄기운이 완연하다. 젊음의 거리답게 행인들은 벌써 경쾌한 봄옷 차림에 발걸음도 가볍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중심지였던 신촌 일대는 이제 최첨단 유행과 청년기의 추억이 공존하는 공간이 됐다. 그 한복판에 연세대와 이화여대가 자리 잡고 있다. 연세대와 이화여대는 지하철 2호선 신촌역과 이대입구역에 인접해 가족이 하루 코스로 둘러보기에도 제격이다.
▽고색창연(古色蒼然) 속을 산책하다=연세대 정문에 들어서면 시원하게 뚫린 백양로가 한눈에 들어온다. 연세대의 상징인 독수리탑을 지나 백양로 정면에 보이는 언더우드관(사적 제276호)은 1924년에 완공된 고딕양식 건물. 언더우드관 양 옆으로 서 있는 스팀슨관(사적 275호)과 아펜젤러관(사적 277호)도 색 바랜 외관이 고풍스러운 멋을 뽐낸다.
스팀슨관 뒤편에는 연세대 동문이자 저항시인인 윤동주(1917∼1945)의 시비(詩碑)가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로 시작되는 ‘서시’를 읽다보면 암울한 일제강점기에도 희망을 잃지 않았던 한 시인의 의지가 읽힌다.
연세대 연희관에서 언더우드관으로 가는 길은 영화촬영 장소로도 유명하다. ‘엽기적인 그녀’에서 전지현이 차태현에게 “나 잡아 봐라”하며 도망치고, ‘클래식’에서 남녀 주인공이 비를 맞으며 뛰어가다 도착한 장소(연희관)다. 오랜 역사를 간직한 건물 앞에서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며 기념촬영을 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동화 같은 교정=이화여대 정문 입구는 요즘 공사가 한창이다. 지상은 녹지로, 지하는 강의실 연구실 서점 등을 갖춘 지하복합공간으로 꾸미는 공사다.
정문을 지나 곡선으로 나있는 오솔길을 오르다 보면 이화여대 본관이 보인다. 1935년 정동에서 신촌으로 학교를 이전하면서 처음 지은 건물이다. 본관 주변에는 예배당 겸 공연장으로 사용 중인 3300석 규모의 대강당 곁으로 목련 벚꽃나무가 줄지어 서 있다.
본관 뒤편 중앙도서관으로 가는 길에 위치한 신단수도 산책 코스로 그만이다. 다리가 아프면 동화처럼 예쁜 교정 곳곳에 마련된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해도 좋다.
▽유물의 보고=연세대와 이화여대는 모두 걸출한 박물관을 갖고 있다. 연세대 100주년기념박물관은 골각기와 석기유물을 비롯해 삼국, 고려, 조선시대 등의 유물 14만여점을 보유하고 있다. 미술관 상설전시실 민속실 등도 마련돼 있다. 02-2123-3338
이화여대 박물관의 경우 올 8월 재개관을 목표로 공사 중. 그 대신 조형예술관 옆에 위치한 자연사박물관에 가보자. 1969년에 설립된 국내 최초의 자연사박물관인 이곳은 철갑상어 목도리도마뱀 열대귀뚜라미 등 살아있는 생물과 화석, 동식물 표본 등이 가득하다. 특별기획전 ‘벌레들의 행성’이나 심해탐험 비디오를 감상하는 것도 산교육이 될 듯하다. 02-3277-2566
▽맛나고, 값싸고=연세대 학생회관은 음식백화점으로 불러도 손색이 없다. 지하의 ‘맛나샘’은 찌개 1500원, 덮밥은 1700원으로 저렴하다. 1층 ‘고를샘’은 자신이 먹고 싶은 음식을 골라 먹을 수 있다.
이화여대 포스코관 지하 1층의 ‘이화사랑’은 커피 맛이 일품이고 간단한 패스트푸드도 있다. 헬렌관 지하의 ‘아름뜰’에서는 3000원짜리 스파게티가 입맛을 돋운다. 연세대 정문 건너편의 독수리빌딩(옛 독수리 다방)이나 신촌 기차역 인근의 ‘민들레 영토’도 추억의 명소로 꼽힌다.
황태훈기자 beetlez@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