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인 작 ‘지각의 주(柱)’
‘내 손을 거친 그들이 메마른 이 시대에 한 인간으로 남아주길 원했고, 함께하는 공기를 정열의 뜨거움으로 데워 그 숨소리가 서서히 가슴으로 밀려와 주길 바랐다. 흙을 주무르면서 비로소 세상이 조용해지기 시작한다. 다시 머리는 맑아지고 시야가 넓게 들어온다. 흙을 만지면서부터 인간의 본성을 생각했고 내가 살아있는 기준을 마련했다.’
조각가 류인(柳仁 1956∼1999)이 세상을 떠난 지 5년. 전통적인 방식으로 인체를 다루면서도 현대적인 표현을 성취한 뛰어난 조각가로 인정받은 그는 내연하는 정열을 다 가누지 못하고 마흔 셋의 나이에 요절해 안타까움을 주었다.
한국 추상화단의 대가 류경채(柳景埰)의 아들로 태어나 홍익대와 동(同)대학원 조소과를 졸업한 그는 추상과 설치작업이 지배적인 화단에 구상 조각가로 발판을 굳혔으며, 대한민국미술대전 우수상과 당시 문화체육부가 주는 ‘오늘의 젊은 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서울 인사동 모란갤러리에서 3월7일까지 열리는 ‘조각가 류인 5주기 추모전’에 선보인 인체 조각 22점에선 생전의 그가 얼마나 직설적이고 구체적인 방식으로 조각을 통해 인간과 사회를 사유했는지 고스란히 느껴진다.
땅에서부터 솟구쳐 오르는 청년의 모습이 아름다우면서도 처연하게 표현된 작품 ‘지각의 주(柱)’에선 아래로 내뻗은 손의 강한 근육에 의해 지탱되고 있는 상반신이 직사각형 입방체의 구조물에 붙잡혀 있다. 그러나 이 작품엔 그것을 깨부수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인간의 의지가 함께 표출되어 있다.
그의 작품에는 이처럼 삶을 옭아매는 억압과 구속을 부수고 끊임없이 탈출하기 위해 모반을 꿈꾸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충실한 사실적 묘사와 전형적인 조소기법을 썼으면서도 근육질의 상반신만을 따로 떼어 내 조각하는 방식으로 인체의 특정 부위를 왜곡, 변형, 생략하는 파격도 보여준다. 그의 이러한 독창적 공간 해석은 생의 강렬한 힘과 에너지와 함께 불안과 소외를 한꺼번에 느끼게 한다. 02-737-0057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