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가정보원 기조실장직을 맞교대한 서동만(徐東晩)씨와 김만복(金萬福)씨는 기묘한 인연이 있다. 1970년대 후반 서울대 정치학과 75학번인 서 전 실장이 유신 반대를 외치고 있을 때 김 실장은 중앙정보부(국정원의 전신)의 서울대 담당관으로 학원을 출입해 ‘대칭축’에 서 있었다.
이런 인연처럼 의자를 물려주고 받은 두 사람의 행보는 대조적이다. 서 전 실장은 국정원의 인사 개혁을 강하게 밀어붙이다가 온건한 입장을 견지한 고영구(高泳耉) 원장과 부닥쳐 낙마했다는 것이 정설. 반면 정통 ‘국정원맨’인 신임 김 실장은 화합형 인사를 하지 않겠느냐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기 때문이다.
실제 김 실장은 친화력이 강한 스타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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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정보관리실장으로 발탁되기에 앞서 김 실장은 2002년 세종연구소 최고위과정 연수를 받으면서 당시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이던 이종석(李鍾奭) NSC 사무차장의 저서 집필을 도와주는 등 깊은 교분을 맺었고 이것이 NSC에서 일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됐다는 후문이다.
이 때문에 이번의 경우도 이 차장의 도움이 적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주변의 추측이다. 그러나 여권의 한 관계자는 “김 실장의 발탁은 노 대통령이 직접 결정한 것이다. 노 대통령은 지난해 말 김 실장이 정부합동조사단장으로 현지방문 조사 결과를 보고하는 과정에서 그를 눈여겨봤던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아무튼 김 전 실장도 과거에는 적지 않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는 1998년 김대중(金大中) 정부 출범 직후 부산 출신이라는 이유로 일부 호남 출신 인사들이 작성한 ‘살생부’에 이름이 올랐다가 김영삼(金泳三) 정부 때 한직으로 돌았다는 사실이 밝혀져 겨우 해직을 모면했다.
국정원 일각에서는 이런 ‘아픈 경험’ 때문에 자칫 그가 ‘권력 밀착형’ 행보를 보일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1998년 국가안전기획부(국정원의 전신) 구조조정 때 해직됐다가 노 대통령과의 인연을 바탕으로 이번에 국정원장 정책특보에 재입성한 이화춘씨에 대해서도 ‘국정원의 정치화’를 가져오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시각이 있다.
하지만 ‘국정원맨’인 김 실장의 기용이 국정원의 ‘탈(脫)정치화, 탈권력화’를 한층 가속시킬 것이라는 기대도 적지 않다. 한 관계자는 “과거에는 기조실장이 바뀌면 직원들이 며칠씩 인사 얘기로 술렁댔지만 이번에는 하루 만에 잠잠해졌다”며 “조직이 정치적 연줄로 흔들리지 않는 흐름이 더욱 확고히 정착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윤승모기자 ysm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