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공간에서 남한의 좌파세력이 소련 군정지도부에 남조선 정세보고서를 작성해 전달했다는 사실이 관련 학자들 사이에 알려져 있긴 했지만, 이번에 발간된 ‘소련군정문서’를 통해 처음으로 그 사실이 분명 확인됐습니다.”
국사편찬위원회(위원장 이만열)가 최근 번역 출간한 ‘러시아연방 국방성 중앙문서보관소 소련군정문서 남조선 정세보고서(1946∼1947)’ 수집 작업을 주도한 강인구 편사연구사(44). 그는 이 자료를 통해 “해방공간의 정황을 좌익 지도자들이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게 돼 미국 자료 중심의 이해에서 벗어나 균형 있는 시각을 갖출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 자료들은 46, 47년 서울에서 열렸던 미소 양군 사령부 대표자회의와 미소공동위원회에 참가했던 소련 대표단 관련 자료를 묶은 ‘미소공동위원회 문서군’에 포함돼 있던 ‘남조선 정세보고’ 시리즈를 우리말로 옮긴 것.
문서 중에는 46년 3월 27일 여운형이 김일성의 개인 비서인 황병옥을 만나 좌우합작을 관철하기 위해 끝까지 그를 설득하려 했던 일, 46년 8월 20일 남조선 좌익 3당의 합당 문제와 관련해 박헌영이 북조선 공산당 명의로 좌익 3당 합당에 비판하는 성명서를 발표해 줄 것을 요구했던 사실 등 광복공간의 이면을 엿볼 수 있는 자료들이 포함돼 있다. 46년 3월 27일의 구두(口頭) 정보보고 문서에는 김구와 이승만의 갈등이 심화돼 거칠게 다투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 사업은 2001년부터 5년 계획으로 100억원의 예산을 책정해 추진하고 있는 ‘해외 한국사 자료수집 이전 사업’의 성과.
강 연구사는 “이 사업추진 덕택에 해외사료에 대한 조사연구사업이 미국 일본 중심에서 러시아, 동유럽, 중앙아시아 등 이른바 ‘소외지역’으로 확대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또 그는 “동유럽에 있는 북한관련 자료 등은 현대사연구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현재 대북정책을 입안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며 장기적 관점에서 사업 확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형찬기자 kh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