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처칠 노벨문학상 ‘패자 부활전’ 통해 받았다

입력 | 2004-02-23 19:29:00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군복을 입고 승리의‘ V’자를 그려보이는 윈스턴 처칠. -동아일보 자료사진


직업문인이 아닌 사람으로는 유일하게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1874∼1965).

1953년 그가 노벨 문학상을 거머쥐었을 때 탈락했던 경쟁자들은 당시 이미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던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 미국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 영국 작가 그레이엄 그린이었다. 특히 처칠은 당초 최종심에 오르지 못했다가 일종의 ‘패자 부활전’을 통해 수상자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스웨덴 한림원이 최근 당시의 심사문서를 공개해 밝혀진 것.

문서에 따르면 53년 최종 후보는 프로스트, 영국 작가 월터 데 라 메어, 아이슬란드 작가 할도르 락스네스였다. 헤밍웨이와 그린은 후보로 추천됐지만 최종심에 오르지는 못했다.

그러나 안데르스 외스털링 당시 스웨덴 한림원 사무총장은 “최종심 후보 세 사람 모두 수상 요건을 갖췄는지 의심스럽다”고 거부했다. 그러나 수상자를 내지 않는 것에 대해 한림원 회원들이 거부하자 외스털링은 8년째 후보로 오른 처칠을 재검토해보자고 제안했다.

처칠은 ‘사브롤라’ ‘말버러, 그의 생애와 시대’ ‘나의 젊은 시절’ ‘세계의 위기’ 등 역사 저술과 자서전 등을 썼으며 스웨덴 작가들의 추천을 받아 1946년 처음 후보가 된 뒤 매년 추천을 받아왔으나 탈락했다. 페르 할스퇴름이라는 원로 한림원 회원의 반대가 강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처칠의 수상이 노벨 문학상에 정치적 색채를 가져올 것이라는 한림원 회원들의 우려도 컸다.

그러나 닐스 안룬트 한림원 회원이 51년부터 줄곧 처칠의 저술 ‘세계의 위기’를 극찬해온 데다 “처칠은 그의 생각에 ‘감격스러운 형태’를 부여한다”며 처칠의 연설문에 대해서도 높은 평가를 아끼지 않자 결국 한림원은 그의 견해를 받아들였다고 외신은 전했다.

한편 헤밍웨이는 54년, 락스네스는 55년, 후안 라몬 히메네스는 56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지만 그린이나 프로스트, 데 라 메어는 결국 수상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권기태기자 kk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