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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체전]장애인 동계체전 이용민 선수의 ‘빙판투혼’

입력 | 2004-02-24 18:07:00

삼육팀 아이스슬레지하키선수 이용민


상대의 보디체크가 연달아 들어왔다.

빙판 위에 나동그라지길 수십차례. 그때마다 다시 일어섰다. 두 다리가 없어 중심을 잡고 일어나기 위해선 두 배, 세 배의 힘이 필요하지만 이용민(사진)은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났다.

24일 강원 춘천의암실내빙상장에서 개막한 제1회 장애인 동계체육대회(주최 한국장애인복지진흥회) 아이스슬레지하키에 출전한 이용민(30·삼육팀)은 두 다리를 잃은 절단 장애인이다.

하반신을 쓰지 못하지만 못할 게 무엇이랴. 24일 강원 춘천시 의암실내빙상장에서 열린 제1회 장애인동계체육대회 아이스슬레지하키 경기. 삼육팀의 이용민(가운데)이 상대선수 사이로 퍽을 드리블하고 있다. 춘천=김미옥기자

그의 운명이 바뀐 것은 꼭 10년 전. 고교졸업 후 군입대에 앞서 경기 시흥시의 공사현장에서 일하다 중장비 운반차량에 깔리는 사고를 당했다. 생명은 건졌으나 깨어보니 두 다리가 없었다.

“죽고 싶었죠. 수술 후 병원에 8개월간 입원해 있었는데 자살하겠다는 생각도 많이 했어요.”

퇴원 후 그는 8년간을 경기 구리시에 있는 집에서만 지냈다. 친구들을 만나러 외출하는 건 1년에 한두 번. 자신을 바라보는 주위의 눈초리도 싫었고 만사가 다 귀찮았다. 유일하게 그가 친구로 삼은 건 컴퓨터였다. 하루 종일 컴퓨터 모니터만 들여다보며 바깥세계와 단절된 삶을 살았다.

그를 은둔 생활에서 벗어나게 해준 사람은 외조카 경민이(5)였다. “경민이가 집에 자주 놀러왔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이게 뭔가. 조카한테 매일 이렇게 무기력한 모습만 보여주고….’ 안되겠다 싶었어요.”

2002년 삼육직업훈련학교에 다니며 바깥세상으로의 ‘외출’을 시도한 이용민은 학교 강습회에서 우연히 아이스슬레지하키를 접하곤 그 매력에 흠뻑 빠졌다.

“최고죠. 이보다 더 짜릿한 게 없어요. 하키를 탈 때는 모든 걸 다 잊을 수 있어요.”

매주 토요일 오후 6시부터 3시간 동안 경기 성남실내빙상장에서 하는 훈련은 그가 운동의 달콤함을 맛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 운동에 재능이 있었는지 실력이 하루가 다르게 늘었다. 팀에서 맡은 역할도 센터포워드. 삼육팀의 전영덕 감독은 “용민이는 체력도 좋고 스피드도 뛰어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이날 연세팀과의 경기에 출전한 이용민은 집중견제로 골을 터뜨리지는 못했지만 부지런히 상대진영을 위협하며 공격수 역할을 했다. 경기결과는 2-2 무승부.

경기가 끝난 뒤 이용민은 “교체선수가 없어 45분을 풀타임으로 뛰니 정말 힘들었다. 우리가 전력에서 뒤지는데 열심히 싸워 비겼으니 다행”이라며 굵은 땀방울을 흘렸다. 건강한 젊은이 이용민. 그의 꿈은 세계 아이스슬레지하키 베스트5로 꼽히는 일본의 엔토를 능가하는 것이다.

춘천=김상수기자 ssoo@donga.com

▼아이스슬레지하키

‘아이스슬레지하키(Ice Sledge Hockey)’는 아이스하키를 장애인들이 할 수 있도록 변형한 경기. 스케이트를 대신해 양날이 달린 썰매를 타고 경기를 펼친다. 선수들은 양손의 스틱을 사용해 슛도 하고 앞으로 나아가기도 하는데 스틱의 한쪽 끝에는 썰매의 추진을 위한 픽(pick)이, 다른 한쪽에는 퍽을 칠 수 있는 블레이드(blade)가 달린 폴이 있다. 경기시간은 15분씩 3피리어드, 마이너페널티 시간은 1분30초로 각각 5분, 30초 짧은 것 외엔 모든 룰이 아이스하키와 똑같다. 강력한 보디체크도 펼쳐져 장애인올림픽 최고의 인기종목.

국내엔 98년 도입됐으며 연세팀(연세 세브란스병원 지원)과 삼육팀(삼육재활원 지원) 등 두 팀이 있다.

김상수기자 s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