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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종합]‘스포츠 + 과학 = 金’ 아테네 공식을 푼다

입력 | 2004-02-25 18:10:00

스포츠는 과학이다. 운동선수들이 일반인에 비해 탁월한 신체능력을 갖게 된 배경에는 선천적인 요인과 숨은 노력 못지않게 스포츠과학의 힘이 숨어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는 게임이 안 풀릴 때면 하늘을 바라보며 천천히 눈을 깜박인다. 스스로에게 최면을 거는 것이다.

뿐만 아니다. 그는 우승한 바로 다음 날에도 여러 스태프와 함께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골몰한다. 스태프에는 현장 코치만 있는 게 아니다. 심리치료를 담당하는 운동심리학, 스윙의 원리를 분석하는 운동역학, 근력을 키우고 부상을 방지하기 위한 운동생리학 전문가가 포진해 있다. 이들은 결코 골프 고수는 아니고 그럴 필요도 없지만 우즈를 세계 최고로 만든 숨은 주역. 스포츠와 과학이 접목된 대표적인 성공사례다.

국내에도 체력과 기술만 있으면 된다는 주먹구구식 선수 양성에서 벗어나 새로운 장르인 스포츠 과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집단이 있다. 태릉선수촌내 체육과학연구원 전문체육연구실 소속 17명의 박사가 그들이다. 그들을 통해 스포츠와 과학을 접목시킨 흥미진진한 사례를 들어봤다.

○운동심리학:정신개조 프로그램까지 동원

김병현 박사는 참으로 묘한 경우를 당했다. 성균관대에 강의를 나가던 98년. 야구감독이 새가슴 선수라며 누군가를 데려왔는데 자신과 이름이 같은 김병현이라고 했다. 쭈뼛쭈뼛하며 감독 뒤에 웅크리고 서 있는 모습이란….

“병현아”하고 다정하게 불렀다. 그러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웃음보가 터졌고 모든 게 술술 풀렸다. 메이저리그 진출을 앞두고 있던 김병현의 고민은 너무 잘 던지려는 욕심에 투구동작 하나하나를 생각하면서 공을 던지는 것.

김 박사는 “모든 동작에 신경을 쓰는 것은 배우는 단계에서나 필요한 컨트롤 프로세싱이다. 너 같은 전문가는 오토매틱 프로세싱을 해야 한다”며 “공을 던질 때 자신의 손끝이나 포수의 미트만 생각하는 키워드를 만들어라”고 주문했다. 불과 3번의 만남으로 치료 끝.

역시 김병현 박사 담당이었던 높이뛰기 1인자 이진택의 슬럼프는 최악이었다. 2002년 부산아시아경기를 앞두고 거의 1년에 가까운 치료가 이어졌다. 그의 고민은 후배 라이벌에 지고난 뒤의 자신감 상실. 온갖 부정적 생각으로 꽉 차 있었다.

기량 후퇴가 아닌 만큼 싸움닭으로 만드는 작업이 필요했다. 군 특수부대인 공수특전단, 해군특전대(UDT), 그리고 세계의 전쟁사와 구전으로 전해오는 얘기 등을 발췌해 130여개의 리스트로 만든 정신개조 프로그램이 동원됐다는 게 옆에 앉아있던 김용승 박사의 귀띔. 다시 정상에 오른 이진택은 김병현 박사에게 아시아경기 금메달을 들고왔다.

체육과학연구원은 스포츠과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해 체계적인 선수 양성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운동역학:엘리트 선수도 기술 바꾸도록 유도

현장 지도자와 가장 충돌이 많은 부분이 운동역학이다. 이에 대한 이순호 박사의 반론.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기술이 바뀐다. 최고의 엘리트 선수들에게 억지로 기술을 바꾸게 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과 행동에 변화를 줘 자연스럽게 기술이 바뀌도록 유도할 뿐’이라는 것.

부산아시아경기를 불과 두 달 앞두고 발가락 깁스를 한 여자탁구의 김무교. 부상 때문에 찾아왔지만 마냥 재활만 시킬 수는 없는 일. 스윙 습관을 분석해보니 전진속공형인 그는 스핀이 먹은 공을 돌출 러버 라켓을 이용해 손목으로만 밀어내는 스타일. 이순호 박사는 “어차피 정상적인 훈련은 안 되는 만큼 눈을 감고 허리를 이용하는 빈 스윙을 집중적으로 해보라”고 주문했다. 나중에 금메달을 딴 김무교는 “발가락을 다치기 잘했다”고 말했다.

여자 역도의 장미란은 근력과 기술은 나무랄 데 없는 선수. 그러나 바를 들어올리는 동작을 분석하니 몸과 바의 거리가 먼 게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한 결정적 이유였다. 문영진 박사는 이를 고치기 위해 가벼운 무게부터 시작해 적정 동작을 유도했다. 이 결과 종전보다 25kg이나 더 들 수 있게 됐고 세계선수권대회 동메달이 따라왔다.

○운동생리학 :맞춤훈련서 시뮬레이션 훈련까지

전문체육연구실장 윤성원 박사가 소개한 운동생리학 분야는 실로 다양하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편한 대로 움직이려는 본능을 갖고 있다. 보상동작이라고 하는데 이를 원용하면 구기종목과 투기종목의 경우 상대 선수의 몇 수 앞까지 내다보는 동작 예측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 배구에서 세터는 찬스 때 가장 믿는 선수에게 공을 올리고 스파이크를 하는 선수는 자신이 가장 잘 하는 기술을 사용한다.

연구원에선 아테네올림픽에 대비, 상대 선수의 성향분석을 위한 기초자료 수집을 위해 직접 해외출장을 가거나 현지 유학생을 활용하고 있다.

제각각인 선수의 기술에 맞는 맞춤 체력훈련과 재활훈련은 기본. 서머타임이 적용돼 8시간이 느린 아테네의 시차 조절을 위한 탄수화물 섭취 식단을 짜고 아테네의 풍향과 풍속을 분석해 양궁의 국내 환경 시뮬레이션 훈련지를 찾아보는 것도 운동생리학의 분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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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환수기자 zangpab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