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관리기관인 대한적십자사가 지난해 상반기까지 헌혈자의 병력(病歷)을 무시하고 마구잡이로 헌혈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간염 에이즈 등에 감염됐을 우려가 있는 혈액임을 알면서도 추후 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았으며, 전염병에 대한 양성 반응이 나온 사람에게도 수차례에 걸쳐 다시 헌혈을 받아왔다는 것.
대한적십자사는 2000년 4월 1일 이후 공급한 혈액 중 간염이나 에이즈 감염의 우려가 있는 혈액 2500여건의 수혈환자를 추적 조사하는 과정에서 수혈 직후 4명이 B형간염, 5명이 C형간염에 감염된 사실을 발견했다.
적십자사측은 당초 조사결과를 발표하지 않다가 시사주간지 주간동아가 보도하자 25일 이를 공식 발표했다. 대한적십자사 혈액사업본부 조남선 안전관리부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혈액관리 체계에 문제가 있었다”고 시인했다.
조 부장에 따르면 ‘헌혈의 집’ 등 헌혈 시설에는 헌혈 희망자가 왔을 때 과거 헌혈 기록을 컴퓨터로 조회해 볼 수 있게 돼 있다. 그러나 장비가 낡아 중앙컴퓨터에 접속이 잘 되지 않아 조회를 생략하는 일이 잦았으며 기증받은 혈액에 대한 사후조회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
조 부장은 군대나 직장 등에서 하는 단체 헌혈의 경우에도 개인휴대단말기(PDA)나 노트북 컴퓨터 등으로 헌혈자의 과거 기록을 조회해 볼 수 있게 돼 있으나 조회가 이뤄진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밝혔다.
조 부장은 또 “조회가 됐다고 해도 헌혈기록이 제대로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별로 중앙컴퓨터(서버)를 따로 운영하고, 서버끼리 연결이 돼 있지 않았기 때문에 질병 보유자가 여러 지역에서 아무 제재 없이 헌혈을 할 수 있었다는 것.
적십자사는 수혈로 간염에 감염된 환자에게는 수혈사고 보상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걸쳐 최고 5000만원의 위자료와 치료비를 지급하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의료시민단체 건강세상네트워크는 성명을 내고 “말라리아 매독 등 다른 전염병에 대한 수혈감염 조사도 실시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라”고 주장했다.나성엽기자 cp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