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뢰밭에 들어갈 때는 지뢰가 어디 있는지 미리 알아두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비즈니스 정보전쟁의 한가운데 서 있는 기업들은 미국 중앙정보국의 첩보전 요령을 배워야 한다.” ‘CIA 주식회사’의 지은이 프레드 러스트만의 말이다. 사진제공 수희재
◇CIA 주식회사/프레드 러스트만 지음 박제동 옮김/301쪽 1만3000원 수희재
이 책 지은이의 신원은 다양하다. 본명은 프레드 러스트만, 미 중앙정보국(CIA) 케이스 오피서(공작 지휘관)와 첩보원 훈련시설인 ‘농장(Farm)’ 교관을 거쳤고 지금은 비즈니스 첩보업체인 CTC 인터내셔널을 운영한다. 현역 시절 그의 위장신분은 ‘아일랜드 비즈니스맨 해리 맥라일리’ ‘계약직 특파원 프레드 라일랜드’ ‘술꾼 관광객 클레이튼 맥스웰’ 등이어서 아직도 그를 그렇게 알고 있는 이들도 적지 않다.
수시로 보호색을 바꿔 온 지은이가 살벌한 첩보전쟁을 벌이는 기업들을 위한 충고로 ‘CIA식 첩보 획득 방식’을 이 책에 풀어 놓았다.
그는 먼저 “암실에 들어가려면 손전등을 들고 가라”고 말한다. 빈손으로 암실에 들어간 경우, 즉 미지의 세계로 아무 정보도 없이 들어가 실패한 기업 사례는 이렇다. 제너럴 모터스는 신차 ‘시보레 노바’를 남미에 내놓았지만 대실패였다. 주로 스페인어를 쓰는 남미에서는 ‘노바(no va)’가 ‘가지 않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포드도 남미에 ‘피에라(Fiera)’를 내놓았다가 “‘추한 노파’를 누가 타겠느냐”는 빈정거림만 받았다.
첩보를 캐내는 갖가지 하드웨어들은 비밀리에 매일 업데이트되지만 가장 확실한 것은 ‘휴민트(Humint)’, 즉 ‘인간에 의한 첩보’다. 문제는 “이 ‘첩보원’을 어떻게 찾고, 길러낼 것인가” 하는 것이다. 러스트만은 ‘작록(爵祿)과 백금(百金)이 아까워 적정(敵情) 알기를 그만 둔 자는 어리석음이 극에 달한 자’라는 손자병법의 한 구절을 인용한다. 또한 ‘채용 대상자’의 자존심과 약점 모두를 북돋워 주라고 한다. ‘물심양면’으로 보살펴 주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게 다 잘 풀리는 건 아니다. 제너럴 모터스의 잘 나가는 간부였다가 메가톤급 사내 정보들을 챙겨 1993년 폴크스바겐사로 옮겨갔던 호세 이그나시오 이나키 로페스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페르디난트 피에흐 당시 폴크스바겐 회장은 로페스에게 눈독을 들였는데 로페스 말고도 여섯 명이나 되는 제너럴 모터스 직원들이 ‘변절’에 가담했다. 이들은 제너럴 모터스의 미래 공장 건설계획인 ‘플랜트 X’, 제너럴 모터스의 유럽 자회사인 오펠의 갖가지 신형모델 등을 정밀하고 대담하게 빼돌리고는 최대 다섯 배의 연봉을 받으며 폴크스바겐으로 건너갔다. 하지만 이들은 경쟁사로 이직한 것을 수상하게 여긴 제너럴 모터스의 치열한 ‘반격 작전’과 4년간에 걸친 소송에 시달려야 했다.
러스트만은 “첩보전에서 방어하기 위해서라도 이 책은 꼭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방어 1단계로 사원들의 관리 지침을 꼽으며 그 내용을 ‘사원이라는 약점’, 한 장에 풀어놓고 있다. 하지만 다른 장들의 박진감과 생동력에 비해 이 장이 특별히 밋밋하고 훈계조로 읽히는 것은 지은이가 역시 ‘공격 전담 첩보원’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권기태기자 kk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