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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책][문학예술]'꼭 같은 것보다 다 다른 것이 더 좋아'

입력 | 2004-02-27 17:38:00

농사꾼을 자처하는 윤구병 전 충북대 교수(철학)의 글은 청소년의 눈높이에서 그들을 철학적 사유로 이끌어 주고, 만화가 이우일의 그림은 그 핵심을 간단명료하게 시각화해서 전해 준다. 그림제공 보리


◇꼭 같은 것보다 다 다른 것이 더 좋아/윤구병 지음 이우일 만화/228쪽 8800원 보리

“민주야. 우리 아버지 잘 알지? 무협소설 나부랭이를 밤새워 읽고 만화라면 열일 제쳐 놓는 철학교수 말이야. 아버지가 몇 해 전에 어떤 여성 잡지에 ‘여자는 남자답게, 남자는 여자답게’라는 제목으로 글을 쓴 적이 있어. ‘여자는 여자답게, 남자는 남자답게’가 맞지 않느냐고? 그렇게 생각하는 건, 우리 아버지 말씀에 따르면 신비화되고 길들여진 ‘여성다움’의 덫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래….”

나래가 민주에게 보낸 편지는 이렇게 시작해서 한국사회의 가부장제가 여성들에게 덮어씌운 멍에를 하나씩 들춰 나간다. 청소년의 관점에서 편지라는 형식을 통해 착한 여자와 착한 아내의 신화, 남성 중심의 기업윤리 등 남녀차별을 둘러싼 이야기들을 자연스럽게 펼친다.

이 책은 1996년 충북대 철학과 교수를 그만두고 농사꾼이 된 저자가 청소년들을 위해 쓴 철학 이야기다. 농사를 지으며 변산공동체학교를 열어 아이들과 함께 지내고 있는 그는 아이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교육이 어떤 것인지 늘 생각하고 있기에 여느 철학자들과 달리 아이들의 고민과 그들의 눈높이를 잘 알고 있는 듯하다.

광부의 딸로 태어나 가난하게 살면서도 세상을 밝은 눈으로 들여다볼 줄 아는 아이인 민주와 교수의 딸로 살아가면서도 살아 있는 교육에 목말라 하는 밝은 아이 나래, 그리고 나래의 아버지. 이 세 사람이 주고받는 편지 형식으로 된 글들을 통해 저자는 청소년들과 눈높이를 맞추며 삶의 철학을 이야기한다.

유행가와 팝송을 좋아하는 딸에게 우리말의 질서와 민중의 노래 전통에 바탕을 둔 민요의 중요성을 알려주고, 자살을 꿈꾸는 사춘기 소녀 민주를 위해 삶과 죽음의 의미를 이야기 한다. 도시뿐 아니라 농촌 곳곳까지 파고든 공해의 위험성을 함께 걱정하고, 가장 훌륭한 교과서는 시험문제를 잘 맞추는 참고서가 아니라 바로 자신들이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임을 가르쳐 준다.

아이들과 함께 풀어가는 농사꾼 윤구병의 푸근하면서도 진지한 철학이야기 외에 주고받는 편지마다 덧붙여진 이우일의 재기발랄한 만화가 있어 내용의 핵심을 다시 한번 즐겁게 음미할 수 있다.

저자는 청소년들의 삶을 왜곡하는 교육현실을 염려하고 비판하면서 책을 마무리한다.

“‘참교육’은 교육 민주화가 이뤄지고 난 뒤에 비로소 이뤄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에서 학생과 학부모와 교사가 맞닥뜨리고 있는 실제 현실에서 출발해야 한다. 가장 훌륭한 교과서는 학생과 학부모와 교사가 맞닥뜨리고 있는 실제 현실이다. 이오덕 선생의 말씀대로 광부의 자식은 아버지인 광부의 삶을 알아야 한다. ‘의식해야’ 한다….”

김형찬기자 kh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