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후 대구 달서구 두류3동의 마을홍보회관에서 가수 신광우씨가 노래를 부르자 마을 주민들이 박수를 치며 즐거워하고 있다. -대구=정양환기자
18일 오후 대구 달서구 두류3동 마을홍보회관.
한 가수가 간이무대에 오르자 20여명의 마을 주민들이 익숙한 듯 반색하며 박수를 쳤다. 이날은 이 동네 주민이자 트로트 가수인 신광우(申洸宇·54)씨가 동네 노인들을 상대로 무료 공연을 하는 날. 귀에 익은 트로트 음악에 사람들은 신이 났다.
이영란 홍보회관 원장(43·여)은 “2년 전부터 신씨가 무료공연을 시작했는데 적적한 동네 어른들이 신씨의 공연만 손꼽아 기다린다”고 말했다.
신씨는 가수 활동을 한 지 30년이 넘는 중견가수. 전국적으로는 무명이지만 대구에서는 20년 가까이 불우이웃을 위해 무료자선공연을 펼쳐 꽤 유명하다.
신씨에겐 특별한 무대가 따로 없다. 양로원 교도소는 물론 조그만 동네 노인잔치도 거절하는 법이 없다. 신씨는 “밤무대는 돈을 줘도 싫다”면서 “힘든 사람들을 위해 노래할 때가 가장 즐겁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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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신씨는 아직 전세방도 못 면할 정도로 곤궁하게 산다. 그런 신씨가 사비까지 털어가며 무료공연에 나선 것은 친할머니에 대한 기억 때문.
아버지가 도의원으로 꽤 넉넉했던 신씨의 집안은 5·16 쿠데타로 각종 규제에 걸리면서 가세가 순식간에 기울었다. 가족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이 때 대구의 한 양로원에 기거하던 할머니는 지켜보는 가족도 없이 쓸쓸하게 숨을 거뒀다.
“20년 전쯤 우연히 들른 한 양로원에서 외로운 어른들을 뵈니 꼭 우리 할머니 같더군요. 그때부터 딴 생각 할 것도 없이 무작정 양로원을 찾았습니다.”
이렇게 시작한 신씨의 무료공연이 올해로 300회를 넘었다. 경북 고령군 대창양로원 신월식 원장은 “신씨는 봉사를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말했다.
마침 기자가 신씨를 만난 18일은 대구 지하철 참사가 있은 지 1년째 되던 날. 그 날의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았지만 대구의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푸르렀다.
“대구 역시 저렇게 푸른 희망을 다시 찾을 겁니다. 전 그런 희망을 노래하고 싶고요.”
대구=정양환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