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렬 대표체제가 무너졌다고 하지만 한나라당의 상황은 여전히 혼란 그 자체다. 제2창당이든 신당이든, 변화의 방향과 내용을 소망하는 축문(祝文)은 있어야 하건만 그런 설계가 전혀 없다. 소장파와 영남파, ‘최 대표 지지파’의 갈등 얘기만 들려온다. 광풍에 휘몰려 백척간두에 섰는데 각자가 자기 패만 따지고 있는 꼴이다.
새로운 방향과 내용을 제시해 바람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면 결코 노무현 대통령의 ‘총선 올인’에 맞설 수 없을 것이다. 필자는 보수정당으로서 한나라당은 고사(枯死) 위기에 처한 한국의 보수에 새로운 싹을 틔울 자양분이 되기를 마다하지 않아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본다. 그게 ‘새로운 보수’로서 한나라당이 갈 방향이요 내용이다.
이를 위해 한나라당은 우선 한국의 보수 내부에서 암약해 온 ‘부패’와 절연해야 한다. ‘대선자금 정국’을 두고 검찰을 지렛대로 한 노무현식 공작정치라고 호도해선 안 된다. 한나라당은 억울할지 몰라도 ‘차떼기’에 공분하지 않는 국민이 없다. 이번 총선을 통해 한나라당은 조직을 동원하고 뒷돈을 찾고 탈법을 일삼은 과거의 선거 관행을 버려야 한다. 당의 명운을 걸고 준법 공명선거로 승리할 실효적인 조치를 선거전에 내세워 실천해야 한다.
새로운 보수는 정책정당의 모습이어야 한다. 한국의 정당사는 권력지상주의자들의 명멸사(明滅史)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조폭 두목 같은 보스들의 정치적 야심과 이에 동원된 용병집단들이 활개를 쳤다. 노 대통령이 열린우리당에 입당한다면 그 당도 이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
한나라당은 이제 보스가 없다. 그게 오히려 기회다. 보스의 자금 지원과 카리스마 부재에 불안해하지 말고 산업화, 민주화를 넘어 ‘선진화’를 위한 정책세력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정권의 실책을 비방하기에 앞서 힘 있는 대안과 꿈틀거리는 비전으로 보수의 책임감과 함께 정치의 엄숙함을 보여줘야 하는 것이다. 허망한 출세욕과 낡은 관행에 연연하면 ‘역사의 퇴물’로 사라질 뿐이다.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선거는 언제나 보스의 권력욕과 용병들의 출세욕이 어우러져 부정의 장으로 끝났다. ‘쇼’가 아니라 진실하고 결연하게 낡은 관행을 폐기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스스로 공명을 자신할 수 있는 선거, 국가 선진화의 비전과 정책을 당당하게 설득하는 선거를 치르기 위해서는 지휘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 점에서 한나라당의 차기 대표는 현재의 당내 인물구도를 벗어나 새로운 인사를 물색해야 한다. 2002년 월드컵축구대회에서 한국 국가대표팀을 4강으로 끌어올린 거스 히딩크 감독을 생각해 보라. 연고가 없어 당내 권력경쟁을 야기하지 않고 추상같은 원칙으로 깨끗한 선거를 치르며 정책정당으로의 변신에 비전과 정책의 횃불을 들 수 있는 사람이 지금 한나라당엔 필요한 것이다.
그런 사람이 지금의 한나라당 안에는 없다는 것이 국민 일반의 생각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에는 보상을 바라지 않고 한시적으로 몸을 던져 한국 보수의 발전적 부활을 지휘할 인사가 반드시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을 찾아볼 것을 권한다.
조성환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