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선생님께서….”
지난달 26일 오후 3시 대전 유성구 어은동 어은중학교 강당. 이 학교 오동환(吳東煥·62) 교장의 정년퇴임식이 진행되고 있을 때 한 노인이 꽃다발을 들고 느린 걸음으로 연단에 올라섰다.
오 교장은 잠시 누군지 몰라 고개를 갸웃거리다 갑자기 그대로 엎드려 큰절을 올렸다. 그리고는 사회자에게 “저의 초등학교 은사님이 오셨다”고 소개했다.
‘깜짝 하객’은 오 교장이 고향인 충남 금산에서 추부초등학교 다니던 시절 1학년 담임을 맡았던 박묘서옹(85). 오 교장은 ‘스승의 날’에 종종 찾아뵙기도 하고 얼마 전에는 노환으로 편찮다는 소식을 듣고 문병도 갔지만 정년퇴임 얘기는 전혀 비치지도 않았기 때문에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박옹은 사회자의 소개를 받고나서도 제자의 정년퇴임에 대한 감회 때문에 그저 울먹이기만 했다. 이날 아침 웃으며 교단을 떠나겠다고 별렀던 오 교장은 은사의 이런 모습에 마침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노(老) 스승과 제자가 서로 부여잡고 우는 모습을 목격한 학생과 교직원, 학부모 1000여명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박수는 어느 샌가 ‘스승의 은혜’ 합창으로 이어졌다.
이날 퇴임식에는 오 교장의 전임지였던 대전 혜화학교에서 정신지체장애인이면서 4년제 대학(중부대)에 합격해 화제를 모았던 김호근씨(23) 등 제자들이 찾아와 감동을 더했다.
오 교장은 “꿈 꾼대로 우리나라를 이끌 수 있는 훌륭한 인물이 돼 달라”고 학생들에게 당부한 뒤 강당 현관까지 두 줄로 서서 박수치는 학생과 교사 학부모 사이를 박옹을 부축하며 걸어 나왔다.
이 학교 김원중(金元中) 교감은 “이날 퇴임식은 굳이 스승 존경이나 제자 사랑을 말로 강조할 필요가 없는 산교육장이었다”라고 말했다.
황조근정훈장을 받고 퇴임한 오 교장은 과학교사 출신으로 재직시절 32편의 연구물로 32번 수상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퇴임에 앞서 2월 중순 교문 인근에 ‘본교 출신 노벨상 수상자 기념비 예정지’라고 쓴 비석을 세우기도 했다.
대전=지명훈기자 mhj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