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총선 D―45일인 1일까지도 전국의 표심(票心)은 여전히 안개 속에 가려 있다. ‘차떼기’로 상징되는 정치권의 부정비리에 대한 실망감에다 끝 모를 경기 침체의 망령은 정치 냉소주의를 넘어 허무주의를 부채질하고 있는 가운데다. 그런 가운데서도 과거 확실한 지역맹주를 갖고 있던 영호남과 충청권에서는 새로운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한 각 당의 물밑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영남 “정치 생각하면 답답해”▼
각종 지표만을 보면 전통적으로 한나라당의 텃밭인 이 지역에서 열린우리당의 상승세는 두드러진다. 특히 여권이 장차관을 지낸 거물급 인사들을 ‘올인’한 효과도 부분적으로 감지된다.
최근 지역 언론에서 부산 경남(PK) 주민들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열린우리당의 지지율은 “정치만 생각하면 답답하다”는 비판 여론에 힘입어 한나라당을 오차한계 범위 내로 추격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지난달 초 발생한 한나라당 소속 안상영(安相英) 전 부산시장의 자살은 열린우리당의 상승세를 주춤하게 만들었다는 분석이다. 여기에다 부산 지역의 경우는 열린우리당 후보들의 중량감이 떨어져 상승세를 이어가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도 설득력 있게 나온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서도 일부 젊은층은 기대감을 보이고 있지만 부정적 평가가 많았다. 부산대 앞에서 만난 대학생 김모씨는 “노 대통령이 시도한 변화의 리더십은 높이 살 만하다”고 긍정 평가했으나 택시운전사 안모씨(58)는 “TV에 (노 대통령이) 나오면 채널을 돌려 버린다”고 노골적인 반감을 보였다. 다만 노 대통령의 출생지인 경남 김해에서 통영을 잇는 남해안 벨트에선 열린우리당 후보가 강세를 띠고 있어 한나라당을 긴장케 하고 있다.
대구 경북(TK)에서는 PK권보다 노 대통령에 대한 비판여론이 더욱 높지만 장차관을 지낸 열린우리당의 거물급 후보들이 속속 선거전에 뛰어들어 민심을 파고들고 있다.
여권의 거물급 후보들은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해선 야당이 아닌 힘있는 여당 후보가 돼야 한다”는 논리로 얼어붙은 ‘TK 표심’을 파고들고 있다.
반면 한나라당은 이 지역에서 강한 반노(反盧) 정서에 기대를 걸고 있다. 도지부 관계자는 “여권의 공세는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칠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대구=정연욱기자 jyw11@donga.com
▼호남 “黨은 왜 쪼개 곤란하게”▼
“고거이 성가시제이.”
지난달 25일 광주시내 중심가 대인시장에서 만난 상인들은 “민주당과 열린우리당 가운데 어느 당을 지지하느냐”는 질문에 선뜻 입을 열지 못했다.그러나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불신만은 하늘을 찔렀다. 시장에서 30년간 홍어를 팔았다는 김금애씨(65)는 “나이 먹은 국회의원들 뽑아봤자 다 돈만 처먹고…”라며 “이번에는 젊은 사람들이 해야지”라고 말하기도 했다.
광주의 경우 열린우리당의 기세가 만만치 않음이 피부로 느껴졌다. 택시를 운전하는 안종목씨는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이 5 대 5라는 사람도 있고, 광주(6개 지역구)에서 민주당은 한두 석만 당선될 거라는 사람들도 있다”고 전했다. 열린우리당에 대한 지지는 젊은층에서 높았다.
그러나 박하동씨(42)는 “노무현씨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줬더니 민주당을 죽이려 한다”며 열린우리당에 대한 노골적인 반감을 표시했다. 한 공무원은 “민주당을 전통적으로 선호하는 ‘누룽지표(바닥표)’가 적지 않다”며 민주당의 바닥 지지세가 여전함을 암시했다.
전북 전주시의 분위기도 광주와 비슷했다. 다만 이곳은 젊은층을 중심으로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에 대한 기대감이 적지 않다는 게 특징. 택시운전사인 김정신씨(48)는 “정 의장에 대한 기대효과까지 겹쳐 젊은층은 열린우리당을 선호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하지만 시내 중앙동의 다방 주인 허춘자씨(50)는 “우리 다방은 나이 드신 분들이 많이 찾는데 민주당 지지자가 더 많다”며 “열린우리당이 상승세를 타면서 과거 한나라당을 지지했던 사람들까지 민주당을 응원하곤 한다”고 말했다.
광주·전주=윤영찬기자 yyc11@donga.com
▼충청 “JP고 뭐고 관심 없어요”▼
“JP가 나오든 말든 관심 없어유.”
충북 청주시에서 철고물 수집업을 하는 최균식씨(42)는 총선 기류에 대한 질문에 대뜸 이렇게 말했다. 충청지역의 청장년층 대부분은 자민련과 김종필(金鍾泌) 총재에 대한 기대를 접어버린 듯했다.
반면 행정수도 이전 문제와 맞물려 열린우리당에 대한 지지는 의외로 높았다. 전 의원 보좌관 이장우씨(40)는 “내 또래나 후배들은 열린우리당 지지 경향이 강하고, 50대 이상은 자민련에 대한 미련을 갖고 있다. 세대차가 뚜렷하다”고 소개했다.
특히 충북 지역은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이던 한나라당 지지세가 지난 대선 이후 “바닥을 뚫고 지하로 들어가 버렸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 그만큼 이곳을 중심으로 열린우리당은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충남의 경우 상당수 지역에서 열린우리당 후보군의 지지도가 정당 지지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대전 지역 방송사의 한 간부는 “자민련을 살려놔야 충청이 홀대받지 않는다는 밑바닥 정서가 강한 데다 자민련 후보군 가운데 개인 경쟁력이 높은 사람이 적지 않아 상당한 의석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고 분석했다.
대전·청주=정용관기자 yonga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