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수출 증가와 내수 급감이라는 불균형 성장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2월 수출은 2003년 2월과 비교해 무려 45.9%나 늘었다. 증가율 기준으로 1988년 8월(52.6%) 이후 가장 높다.
반면 대표적인 내구성 소비재인 자동차 재고는 외환위기 수준으로 급증했다. 업계에서는 "이대로 가다가는 공장을 세워야 할 판"이라는 아우성마저 일고 있다.
미분양 아파트도 2001년 7월 이후 최대 규모다.
전문가들은 수출에 의지한 불균형 성장은 그 자체로 경제 체력을 저하시키는 요인일 뿐 아니라 수출 전망마저 그리 밝지 않다는 점에서 경기 회복의 발목이 잡힐 수 있다고 경고한다.
▽수출 증가율 15년 6개월 만에 최고=산업자원부가 발표한 '2월 수출입실적'(통관기준 잠정치)에 따르면 지난 달 수출은 194억6000만 달러, 수입은 174억900만 달러로 20억5100만 달러의 무역수지 흑자를 냈다.
이는 2월 수출입 실적으로는 사상 최대다. 특히 전년 같은 기간 대비 수출 증가율은 45.9%로 15년 6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1~2월 누적 수출액은 384억5900만 달러, 수입은 335만3100만 달러로 작년 동기 대비 각각 39.1%, 18.3% 늘었다. 무역수지 흑자도 작년 9월부터 6개월째 지속됐다.
▽내수 부진은 외환위기 수준=내수는 위축되다 못해 일부 업종 기업의 생존을 위협하는 단계로 악화되고 있다.
1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지난 달 20일 현재 5개 완성차 업체의 재고 물량은 △현대자동차 7만2000대 △기아자동차 2만5000대 △GM대우자동차 5300대 △쌍용자동차 8600대 △ 르노삼성자동차 7600대 등 11만8500대에 이른다.
이는 외환위기 직후인 98년 1·4분기(1~3월)의 12만대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한국자동차공업협회 김소림(金小林) 이사는 "내수 판매의 적정 재고량은 2주일 치인 5만~6만대"라며 "12만대를 위협하는 재고량이 계속 유지될 경우 업체들이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울 것"고 털어놨다.
생산량 대부분을 내수용으로 출하하는 르노삼성차는 이미 작년 말 하루 2교대 근무에서 1교대로 전환해 생산량 축소를 통한 재고물량 조절에 나섰다.
주택업계도 재고 증가에 시달리고 있다. 건설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1월 말 현재 전국의 미(未)분양 아파트는 4만1137가구로 집계됐다.
이는 한 달 전인 작년 12월 3만8261가구보다 2876가구(7.5%) 늘었을 뿐 아니라 2001년 7월(4만1502가구) 이후 2년 6개월 만에 처음으로 4만 가구를 넘어선 것이다.
미분양 아파트는 지난해 10월 발표된 '10.29 주택시장 안정대책'과 최근의 전반적인 내수 침체가 맞물려 매달 급격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불균형 회복' 불안 증폭=경제 전체에서 수출 비중이 커지면서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 또한 높아지고 있다. 내수가 회복되지 않는 가운데 수출에만 지나치게 의존하게 될 경우 일자리 창출, 신용불량자 감소, 금융시스템 정상화 등의 선순환 구조가 살아나기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 한국은행에 따르면 소비 10억원 당 취업 유발 효과는 24명이지만 수출은 15.7명에 불과하다.
여기에 수출 자체가 막히면 경제 전체를 받쳐 줄 버팀목을 찾기 어렵게 된다는 취약성마저 안고 있다.
이미 국제 원자재 값 급등으로 지난 달 고철 수입액은 전년 동기보다 142.7%, 비철금속은 64.5%, 철강판은 63%나 느는 등 수출업체의 채산성 악화 조짐이 가시화하고 있다.
산자부 이계형(李啓炯) 무역정책심의관은 "2월까지는 수출 실적이 좋았지만 3월부터는 원화환율 하락(원화가치 상승), 원자재 값 상승 및 수급 불안으로 채산성이 떨어지고 수출 증가율 둔화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1일 발표한 기업경기실사지수(BSI)에서도 올해 2·4분기(4~6월) BSI는 1년 6개월 만에 처음으로 기준치(100)를 넘은 105로 집계됐지만 원재료 가격(44), 제품판매가격(92), 자금사정(81) 등의 경영여건은 악화될 것으로 전망됐다.
또 전자·반도체, 컴퓨터, 조선 등 수출 중심 업종은 그나마 경기가 호전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석유화학, 전기기계, 조립금속 등은 국내 소비 둔화와 불확실한 경영여건으로 인해 전분기보다 위축될 것으로 조사됐다.
디지털뉴스팀
고기정기자 ko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