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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희암의 버저비터]전택부 선생의 신조-손자 조성원의 실천

입력 | 2004-03-01 18:46:00


YMCA 명예총재인 오리(吾里) 전택부 선생은 평소 “남 탓하지 말고 자신부터 조용히 하나하나 이뤄나가는 삶을 살아가야한다”고 말씀하신다.

지난 일요일 원주경기에서 2위 KCC가 예상을 깨고 선두 TG삼보를 대파했다. 그 대승의 주역인 조성원이 바로 오리 선생의 외손자. 필자는 그를 볼 때마다 오리 선생의 말을 떠올리곤 한다.

조성원은 홍익중 3학년 때만 해도 기량이 신통치 않았고 키까지 작았다. 이 바람에 고교 진학도 쉽지 않아 팀 동료의 ‘업둥이’(잘하는 선수에 업혀서 진학하는 선수)로 간신히 홍대부고에 진학했다. 이에 조성원은 고교 입학 후 당시 신용보증기금 감독으로 있던 김춘수 감독(현 한양대감독)에게 자청해 2년 동안 매일 새벽 피 눈물 나는 개인훈련을 받았고 이런 노력으로 고교 졸업반 때는 명문 고려대의 스카우트 대상자로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조성원의 어머니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3년 전 아들 성원이의 고교 입학에 도움을 줬던 그 친구에게는 정작 어느 대학에서도 스카우트 제의가 없어서 대학 진학이 불가능했기 때문.

당시 고려대 박한감독의 입학 조건은 조성원 혼자만 오라는 것이었고 진성호 감독(현 중국 수도강철 감독)이 이끌던 명지대는 업둥이 1,2명을 붙여도 좋다는 조건이었다. 선망의 대상인 고려대를 택할 경우 아들에게는 영광이지만 동료는 대학에 진학할 수 없는 상황. 이들 모자는 고민 끝에 명지대를 선택했다. 비록 남들은 알아주지 않더라도 의리를 저버릴 수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조성원은 프로무대에서 KCC의 전신 현대에게 처음으로 우승컵을 안겼지만 키가 작아 수비가 약하다는 이유로 LG의 장신 포워드 양희승과 트레이드되는 설움을 겪었다. 같은 이유로 SK 김영만과 재 트레이드 된 뒤 다시 KCC의 전희철과 트레이드 되는 과정에서 그가 느끼는 감정은 남달랐을 것이다. 자신을 버린 팀에 대한 원망도 컸을 터.

그러나 조성원은 달랐다. ‘남에게 소리치지 않으면서 스스로 하나하나 이루는 삶을 실천하라’는 외조부의 말씀처럼 묵묵히 소속팀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팀의 주포로 맹활약하는 그의 얼굴 위에 오리 선생 부녀의 모습이 겹쳐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면 필자만의 유별난 생각일까.

MBC 농구해설위원 cowm55@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