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자금 수사가 막바지에 이르면서 2002년 대선 주자였던 이회창(李會昌) 전 한나라당 총재가 불법 대선 자금을 유용했다는 정황이 발견돼 실제 여부가 쟁점이 되고 있다.
▽검찰 조사 상황=검찰은 대선 당시 이 전 총재의 법률 고문을 지낸 서정우(徐廷友·구속) 변호사에 대한 조사에서 이 전 총재측이 서 변호사에게서 여러 차례에 거쳐 돈을 받은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관측됐다.
서 변호사는 삼성 LG 현대자동차 등에서 불법 대선자금 530여억원을 거둔 인물로 재벌그룹도 불법 자금 전달 당시 서 변호사를 이 전 총재의 ‘대리인’으로 여겼던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특히 서 변호사가 삼성에서 받은 채권 282억원의 행방을 추적하고 있어 수사 결과에 따라서는 이 전 총재의 소환 조사 등 상당한 파문을 일으킬 수 있다.
검찰과 정치권 주변에서는 이 전 총재가 불법 대선자금을 직접 받았거나 대선자금을 유용했다는 소문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어 이 전 총재가 구속되는 것이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일부 언론에서는 2일 이 전 총재의 가족이 수십억원대의 불법 대선자금을 받아 이 전 총재의 아들과 수행비서 등을 위해 사용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검찰은 이 전 총재를 직접 조사할 근거가 아직 없다고 밝히고 있다. 이 전 총재가 불법 자금 모금을 지시했거나 불법자금 유용에 관여했다는 단서가 수사를 통해 드러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이 전 총재가 관여했다는 증거가 없는데도 이에 대한 풍설이 끊임 없이 나돌아 그 배경에 모종의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냐고 의심할 정도”라고 말했다.
이 전 총재의 한 측근은 일부 언론의 보도에 대해 “대선 이후 서 변호사가 자기 돈 2억∼3억원(수표)을 이 전 총재에게 전달했지만 서 변호사는 검찰에서 이 돈이 대선자금이 아니라 자기 돈이라고 밝혔다”고 주장했다.
▽수사 전망=만일 이 전 총재가 서 변호사에게서 불법 대선자금 중의 일부를 직접 전달받은 사실이 드러나면 검찰 조사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그러나 서 변호사가 건넨 돈이 대부분 현금이라면 불법 자금 유용을 입증하는 것이 간단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이 전 총재가 대선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경쟁자였던 점도 검찰의 부담이다.
검찰이 이 전 총재를 소환 조사할 경우 현직 대통령도 조사해야 한다는 말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정위용기자 viyonz@donga.com
이회창씨 “사실무근” 격앙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측이 대선자금 유용 의혹에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2일 일부 언론에 지난 대선 때 자금 일부가 이 전 총재 가족에게 전달됐다는 내용이 보도되면서 대선자금 유용 의혹이 새롭게 불거졌기 때문이다.
이 전 총재는 이날 측근들로부터 이 같은 보고를 받은 뒤 “사실무근이다. 어떻게 이런 내용을 확인도 하지 않느냐”며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 측근이 전했다. 이 전 총재측은 해당 언론사를 상대로 법적 대응에 나서는 등 강력히 반발했다.
검찰도 이 전 총재에 대한 언론 보도를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지만 이 전 총재측은 석연치 않다는 반응이다. ‘이회창 흠집내기’의 노림수가 깔려 있지 않느냐는 판단에서다.
소문의 핵심은 서정우 변호사가 삼성으로부터 받은 채권 중 일부가 돈세탁 과정을 거쳐 이 전 총재 가족과 비서진에 흘러갔다는 것이다.
한 측근은 “수감 중인 서 변호사가 이미 검찰에 ‘이 전 총재는 관련이 없다’는 진술을 했는데도 검찰 주변에서 이 전 총재 관련설이 흘러나오는 배경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흥분했다.
이와 관련해 이 전 총재는 최근 최병렬(崔秉烈) 대표 등 당 지도부가 자신의 비리 의혹을 거론하는 데 대해서도 상당히 격앙했다는 후문이다. 이 전 총재는 발언의 진원지로 지목된 당내 인사 몇 명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불편한 심기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