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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치질 멈춘 현장 흙먼지만…신축학교 100곳 개교 못할판

입력 | 2004-03-03 18:54:00


“보름 넘게 공사를 못하고 있습니다. 시장에서는 가격이 두 달 사이 50%나 뛰었는데 그나마도 철근상과 안면이 없으면 구하기 어렵습니다.”

경기 구리시 토평동에 있는 토평고등학교 다목적 교실(체육관) 공사현장의 정승만 소장(반도환경개발). 그는 3일 “관급(官給) 공사라 조달청에서 철근을 받아서 쓰는데 언제쯤 준다는 연락도 없다”면서 “9월까지는 공사를 끝내야 하는데 막막하다”고 털어놓았다.

이 회사는 지난달 16일 경기도교육청으로부터 체육관 건립 수주를 받아 공사를 시작해도 좋다는 허가를 받았다. 지금쯤이면 철근으로 기초바닥을 다지는 공정인 팽이말뚝 공사가 한창 진행돼야 정상이다. 하지만 공사현장에는 말뚝 박는 소리는커녕 오가는 인부들도 눈에 띄지 않았다. 공사지역이라는 표시로 가설 울타리만 엉성하게 둘러쳐져 있었다.

더욱 심각한 곳은 내년에 문을 열 신설학교를 짓는 공사현장. 경기도에서는 내년에 문을 열 100여개 초중고 학교건물을 짓고 있으나 거의 대부분이 철근을 구하지 못해 공사에 차질을 빚고 있다.

경기도청 시설과의 한 공무원은 “내년에 학교 문을 열려면 지금쯤 철근이 많이 들어가는 골조공사를 해야 하는데 철근을 못 구해 우선 다른 공사부터 하고 있다”며 “철근 파동이 장기화되면 공사가 늦어질 수밖에 없는데 큰 걱정”이라고 말했다. 또 지난해 t당 40만원이던 철근 값이 60만원으로 껑충 뛰는 등 예산 부담이 늘어난 것도 고민이다.

중견건설업체인 울트라건설이 맡고 있는 망우산 저류조 공사현장. 홍수피해를 막기 위해 하수관로 용량이 적은 곳에서 물을 일시적으로 가둬두는 시설인 이 곳도 지난해 12월 이후 철근이 반입이 중단됐다. 안상식 현장소장은 “우리는 다른 현장에 비하면 넉넉한 편인데도 앞으로 20일이면 철근이 바닥난다”며 “본사 차원에서 긴급히 물량확보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대기업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한 대형 건설업체 구매팀의 철근담당 과장은 “대기업들도 현장이 요청하는 철근 물량의 60%정도밖에 못 내려 주고 있어 이 파동이 장기화되면 전국의 건설현장에서 공기(工期)를 맞추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건설현장의 자재 대란은 철근뿐 아니라 모래, 알루미늄 등 기초 자재들로 확산될 조짐도 보인다.

대우건설 자재팀의 심명섭 차장은 “당장 코앞에 닥친 문제는 모래”라며 “작은 회사는 7일, 조금 더 큰 회사는 보름, 더 큰 회사는 한달치가량의 재고밖에 없어 이번 사태가 장기화하면 레미콘사가 다 ‘스톱’할 형편”이라고 말했다.

건설업계에서는 “본격적인 봄 공사철이 되면 건설자재 수급사정이 더욱 나빠질 것이 불을 보듯 뻔하지만 기업만의 힘으로는 역부족”이라며 “정부가 사재기 단속, 원자재 확보 등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김광현기자 kkh@donga.com

이철용기자 lc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