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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철칼럼]4·15총선 똑바로 읽기

입력 | 2004-03-03 19:25:00


한나라당 김용갑 의원의 공천을 둘러싼 당내 논란은 4·15총선을 앞두고 지금 한국사회 밑바닥에 깔린 이념적 혼선을 상징적으로 말해준다. 반대쪽에서는 ‘원조 보수’ 김 의원 공천이 ‘수도권 선거에 미칠 색깔론의 악영향’을 이유로 들었다. ‘보수’가 색깔론과 무슨 기막힌 사연이 있는지, 또 색깔론이 왜 악영향과 등식관계인지 따져볼 만한 일이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개인의 공천 타당성 여부를 가리자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색깔론으로 표출되는 사상적 혼돈상을 국가체제 차원에서 보고, 똑바로 읽자는 것이다. 이번 선거는 그동안 누려왔던 자유민주주의 틀 안에서 의석에 따라 1당, 2당, 3당이 정해지는 통상의 정계개편이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자유민주주의 체제 자체를 크게 흔들 수 있는, 국기(國基)의 ‘분기점 선거’란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이번 선거는 여느 선거와 분명 다르다.

▼섬뜩한 여권 ‘혁명공세’▼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면서 두드러진 현상이 ‘친북 반미’ 좌경화 분위기의 확산이다. 김수환 추기경이 열린우리당 지도부 면전에서 우려를 표명하기에 이를 정도가 됐다. 3·1절에 서울시청 광장에서 구국기도회와 국민대회가 열리게 된 연유는 무엇이겠는가. 2만여명의 대회 참석자들은 ‘총체적 위기에 처한 나라’라고 걱정했고 ‘친북 좌익 척결’을 주장했다. 한마디로 지금 나라가 ‘친북 반미’ 좌경화 때문에 위태로워졌다고 외친 것 아닌가.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는 사퇴를 밝히면서 최근 흐름을 보다 구체적으로 요약했다. ‘친북 반미 성향의 노무현 정권과 사회단체로 위장한 급진 좌파가 합세하여 4·15총선에서 승리하고자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는 상황’이란 것이 그의 진단이다.

그래서 정치한다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이렇듯 한국사회 곳곳에 엄존하는 이념적 위기감을 어떻게 소화하고 해소하려는가. 이것도 색깔론으로 치부할 터인가. 그럴 수는 없다. 지금 여권은 총선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대통령의 총선 개입 시비가 잇따르고 있지만 총선정국을 점차 제압해 가고 있는 분위기다. 그런 가운데 ‘민족’과 ‘시민혁명’을 앞세운 구호가 시도 때도 없이 되풀이되는 이유는 뭔가. 혁명으로 무엇을, 누구를 무너뜨리겠다는 것인가. 현 정권 핵심 세력의 ‘사회 주류를 바꿔 버리겠다’는 외침과 맞아떨어지는 구호 아닌가. 이보다 무서운 이념공세가 또 있는가. 그런데 다른 정파들은 속수무책이요, 공천 공방뿐이다. 더욱이 정체성 정립이 무엇보다 시급한 한나라당에서 색깔론이 나왔으니, 이렇게 헷갈릴 수가 없다. 총선에서 어느 길을 가야 하는지 스스로 물어보라. 보수 정파를 지향하겠다면, 중요한 것은 분명히 이념노선을 밝히는 일이지, 대북 현금 지원식의 ‘이념적 멋’을 부릴 때인가. 보수를 자임하면서 좌고우면(左顧右眄)하는 흐리멍덩한 것은 보수가 아니다. 사회의 모든 스펙트럼을 한번에 껴안을 수는 없다. 그래도 색깔론을 주장한다면 이 시점에서 그것은 자기 부정이다.

▼‘좌경화’ 속수무책인가 ▼

현실적으로 더욱 심각한 것은 검은돈과 무기력에 실망한 나머지 지금까지의 지지층에서 투표하지 않겠다는 소리가 알게 모르게 번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분위기라면 17대 총선은 투표율이 낮은 선거가 될 공산이 크다. 지지층마저 기권으로 돌아선다면 그런 정당은 존재 이유가 없다. 상황이 이럴진대, 새 얼굴 내세우고 간판 바꿨다 해서 표가 오리라고 생각한다면 오산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래서는 찍어 줬던 정당이 싫어지고, ‘친북 반미’가 두려운 사람들을 붙잡을 수 없다. 한마디로 무슨 이유를 내세워 이들의 지지를 얻겠다는 것인가. 좌경화에 대한 불안심리나마 확실하게 붙들어 줘야 할 것 아닌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키는 것이 왜 색깔론으로 매도돼야 하는가. 그것이 역색깔론 아닌가. 이젠 피해 갈 수 없다. 정파가 아니라 국가체제를 위해서다. 민주와 자주로 위장했다가 일순에 일어서는 좌파혁명의 생리를 알고 있다. 정치인이 미덥지 못하다면 유권자라도 정신 차리자. 무너지고 나서 후회할 건가. 선택을 강요한 것은 궁극적으로 정권이다.

최규철 논설주간 kih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