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동성 결혼에 대해 논쟁이 뜨거운 가운데 샌프란시스코가 지난달 동성 커플에 대해 결혼 증명서를 발급하기 시작했다. 결혼식을 올린 직후 기쁨에 겨워하는 레즈비언 커플(사진 위)과 입양한 쌍둥이 딸을 안고 있는 게이 커플(사진 아래). 동아일보 자료사진
《‘본래 인간은 행복하고, 완전하고, 자족적인 양성인(兩性人)이었다. 네 개의 팔과 네 개의 다리, 두 개의 머리, 두 개의 생식기를 가졌다. 자만에 빠진 인간들은 신에게 도전했고 제우스는 인간을 둘로 갈라놓았다. 결국 인간은 잘리기 전의 오롯한 행복을 얻기 위해 자신의 반쪽을 찾아 떠돌아다니는 운명이 됐다.’
플라톤의 대화집 ‘향연’에 나오는 이야기다. 왜 사람들이 결혼을 하는가에 대한 가장 오래된 해석 가운데 하나다. 주목할 부분은 잘리기 전의 모든 인간이 두 가지 성(性)을 동시에 가진 것은 아니었다는 점. 여성 둘, 또는 남성 둘이 결합한 경우도 있었다. 플라톤은 남성이나 여성 동성애, 그리고 이들의 결합을 인정했던 셈이다.
그리스 철학자의 견해는 그러나 후세의 완전한 동의를 이끌어내기엔 불충분했던 모양이다. 2500여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결혼의 의미에 대한 질문이 여전한 걸 보면.
21세기 들어 미국에선 논쟁의 불꽃이 더욱 뜨겁게 일고 있다. ‘동성 결혼을 법적으로 인정할 것인가’에서 촉발된 논쟁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치적인 이슈로 변질됐고 진보-보수간의 충돌로 확산되고 있다.》
○ ‘동성애 금지법’ 위헌 파문
미국에서 동성 결혼 문제는 지난해 6월 연방대법원이 안티-소더미법(동성애 금지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성공회가 8월 동성애자인 진 로빈슨 신부를 주교로 임명하자 논쟁은 더욱 거세졌다.
이런 분위기에서 동성애자가 가장 많은 도시로 알려진 샌프란시스코는 지난달 동성 커플에게 결혼 증명서를 발급하기 시작했다. 매사추세츠주는 주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5월부터 공식적으로 동성 결혼을 인정할 예정이다.
찬반 격론이 벌어지는 가운데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결혼이란 남성과 여성의 신성한 행위’라며 연방 헌법에 결혼의 정의를 분명히 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의 존 케리 상원의원은 동성 결혼은 아니지만 동성 부부에게도 이성 부부와 똑같은 법적 권리를 보장하는 ‘시민적 결합(civil union)’에 대해선 지지 의사를 표시했다.
미국 내에서 동성 결혼에 대한 지지율은 아직 낮은 편이다. 다만 일부 주에서 이성 배우자가 아니더라도 ‘가내 동반자(domestic partner)’에 일정한 혜택을 부여하고 있다. 버몬트주는 ‘사회적 결합’을 인정하고 있다.
다양한 형태의 결합에 대해 유럽 국가들은 좀 더 너그럽다. 네덜란드가 2001년 세계 최초로 동성 결혼을 합법적이라고 인정했고 벨기에와 캐나다도 뒤를 따랐다. 덴마크와 노르웨이 등은 결혼의 형태는 아니더라도 동성 커플의 결합을 인정하고 상속권 등에서 부부와 같은 법적 지위를 보장하고 있다.
○ 왜 결혼을 하는가
동성 결혼을 둘러싼 논쟁은 결혼의 근본적인 의미에 대한 물음으로 이어진다.
인간은 왜 결혼을 하는가. 결혼을 통해 무엇을 얻으려 하는가. 종족 번식인가, 성적 만족인가, 정신적인 위안인가, 재산 분할인가. 아니 꼭 결혼을 해야만 하는가.
결혼을 둘러싼 어떤 질문도 간단치 않다. 사회적인 합의는 물론 결혼 당사자간에도 완전한 의견 일치란 기대하기 어렵다.
인류사적으로 살펴봐도 결혼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또 민족과 지역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진행돼 왔다. 일설에 따르면 결혼은 약 5000년 전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여성과 자녀로 이뤄진 가족에 남성을 붙잡아두기 위한 방법으로 처음 탄생했다고 한다.
일부일처제 결혼은 장구한 인류사에서 극히 최근의 일이다. 로마나 그리스시대만 해도 남성들은 여러 명의 부인을 두었고 젊은 남성 연인도 인정됐다. 솔로몬 왕에겐 700명의 부인과 300명의 첩이 있었다.
최근에는 결혼 자체에 대한 도전도 거세게 일고 있다. 결혼하는 커플은 계속 줄어드는 반면 독신, 혼외출산, 계약 동거, 이혼은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이처럼 결혼이 해체되고 있는 와중에 동성 결혼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동성 커플들은 왜 결혼이라는 제도에 그토록 매달리고 반대론자들은 왜 그토록 반대를 하는가.
결혼이라는 행위가 개인적인 동시에 사회적이라는 점에서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결혼은 사회의 기초 구성단위인 가족을 형성하고 종족을 보존하는 기능을 한다. 모든 사회는 결혼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개입을 하고 커플들은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고 싶어 한다. 의식(儀式)만으론 얻을 수 없는, 결혼이 갖는 무게가 있기 때문이다.
○ 사회적 합의 선행돼야
고타마 싯다르타는 사랑하는 아내 야소다라가 자신의 아들을 낳은 밤에 가족을 버리고 집을 나섰다. 부처가 되기 위해 이혼을 감행한 것이다. 그의 나이 29세 되던 해였다.
사도 바울은 “남성이 여성을 건드리지 않는 것이 좋지만 간음을 피하기 위해 남성이 자신의 아내를 얻고 여성이 자신의 남편을 얻도록 하라(고린도서 7장)”고 말했다. 결혼은 큰 죄인 간음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결혼보다 오히려 독신으로 사는 게 경건하다는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대목들이다.
일부일처형 결혼제도는 올바른 방향으로 진화한 산물일까. 생물학적으로 보면 완벽하지도, 자연스럽지도 않다. 4000여종이 넘는 포유동물 가운데 일부일처형 결합은 신대륙명주원숭이 등 고작 10여종에서 나타난다. 자신의 짝 이외의 다른 숙녀들에게 눈길을 돌리지 않는 수컷은 종족을 번식시킬 가능성이 훨씬 줄어든다. 유명인사의 외도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지금도 헤드라인 뉴스를 장식한다.
결혼이라는 제도는 이처럼 엉성하기만 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의 반쪽을 찾아 나선다. 플라톤의 설명대로라면 결혼은 태생적으로 불완전한 인간들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상대가 동성이든 이성이든, 수십억 명 가운데 진짜 헤어졌던 짝을 만나는 일이 쉽건 어렵건 말이다.
동성 결혼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풀기 어려운 숙제다. 동성애와 결혼, 따로 떼어놓아도 어느 하나 쉽지 않은 문제가 한데 엉켜 있다. 더욱이 결혼은 다분히 사회적인 합의가 필요한 문제다. 좋든 싫든 한국 사회를 선행하는 미국에서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하다.
홍석민기자 sm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