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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卷三. 覇王의 길

입력 | 2004-03-04 17:22:00


무너져 내리는 帝國 (5)

자영(子영)이 재궁(齋宮)에 들어 재계를 드린 지 닷 새 째 되던 날이었다. 마침내 계책을 정한 자영은 두 아들을 불러놓고 말하였다.

“승상 조고가 2세 황제를 망이궁에서 시해하고는 나를 끌어다 진나라 왕으로 삼으려고 한다. 겉으로는 의(義)를 내세우고 있으나, 실은 여러 신하들이 역적질한 죄를 물어 자신을 죽일까 두려워 잔꾀를 부리고 있다. 듣기로 조고는 초나라와 몰래 약조하여 진나라 종실(宗室)을 모두 죽여 없애고, 스스로 관중(關中)의 왕이 되려는 속셈이라 한다. 이제 나로 하여금 종묘에 제사를 드리게 하는 것도, 틈을 보아 묘당 안에서 나를 죽이려는 흉계에 지나지 않으니 마땅히 계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찌하실 작정이십니까?”

자영의 아들들이 걱정스레 물었다. 자영이 목소리를 낮추어 가만히 일러주었다.

“너희들은 가만히 재물을 풀어 장사를 모으고, 가동(家동)들을 단속하여 이곳 재궁에다 숨겨놓아라. 나는 병을 핑계 대고 묘현(廟見)의 예를 미루려한다. 내가 며칠이고 계속 이 재궁에 틀어박혀 있으면, 의심 많은 조고는 틀림없이 제 발로 나를 찾아와 내막을 살펴보려 할 것이다. 하지만 제가 나를 왕으로 세웠다 하여 나를 크게 경계하지는 않을 터이니, 그때 장사와 가동들을 불시에 풀어 조고를 덮쳐라. 그러면 조고를 죽이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에 자영의 아들들은 아비가 시키는 대로 채비를 갖추었다.

한편 조고는 자영이 재계(齋戒)에 들어간 지 닷새가 넘도록 묘당에 들려고 하지 않자 몇 차례나 사람을 보내 자영을 불렀다.

“새 임금님께서는 환후가 있으시어 당장은 묘현의 예를 올리시기 어렵다고 합니다.”

자영을 부르러 갔던 사람이 돌아와 조고에게 그렇게 알렸다. 조고가 공연히 불길한 느낌이 들어 말했다.

“묘현의 예를 올리지 않으면 아직 온전한 임금이 못된다. 그런데 그 일이 하루하루 미뤄지고 있으니, 나라에 임금이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밤이 길면 꿈자리도 사나운 법, 즉위를 하루라도 더 늦출 수가 없으니 다시 한 번 다녀오너라.”

하지만 심부름을 갔다 온 사람의 말은 전과 마찬가지였다. 자영이 병들어 누워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한다고 알려왔다. 다급해진 조고가 더 참지 못하고 스스로 자영을 찾아 나섰다.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제가 군사를 모아 오겠습니다.”

승상부를 떠나려는 조고를 사위 염락(閻樂)이 가로막았다. 조고가 가는 눈을 치떠 염락의 주위를 돌아보다 말했다.

“나를 호위하기 위한 것이라면 지금 네가 거느리고 있는 군사만으로도 넉넉하다. 쓸데없이 머뭇거리지 말고 어서 가자.”

“겨우 여남은 기(騎)를 데리고 승상부를 나가 자영이 재계하고 있는 재궁(齋宮)을 찾아가는 것은 위태로운 일입니다. 도중에 흉측한 무리가 엿볼 수도 있거니와, 자영인들 어떻게 믿겠습니까?”

그 말에 조고가 차게 웃었다.

“우리가 갑자기 궁궐을 나서는데 누가 알고 엿볼 수 있단 말이냐? 거기다가 자영은 바로 내가 임금으로 세우려는 자다. 나 때문에 천승(千乘)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는데 무엇 때문에 딴 마음을 먹겠느냐?”

평생 빈틈없는 헤아림과 의심으로 자신을 지켜온 조고였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사신(死神)이 씌운 탓인지 조금도 자영을 의심하지 않았다. 한달음에 자영이 재계를 드리고 있는 재궁으로 달려가, 많지 않은 군사들조차 대문밖에 세워놓고는 염락만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자영이 누워있다는 방안으로 이끌려 가서야 조고는 비로소 무언가 심상치 않은 낌새를 느꼈다. 아파 움직이지도 못한다던 자영이 자리에 단정하게 앉아 있고, 그 뒤로는 범 같은 두 아들이 칼을 찬 채 시립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조고는 머지않아 목 위에 떨어질 칼날은 아직 느끼지 못했다.

“나라에는 하루도 임금이 없어서는 안 되고, 종묘에서 제례를 드리는 일은 임금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반드시 치러야할 의식입니다. 임금님께서는 그와 같이 중대한 일을 어찌하여 하루하루 미루시기만 하십니까?”

조고는 그렇게 제법 나무라는 투로 자영에게 말했다. 자영이 매섭게 조고를 노려보며 꾸짖었다.

“황제를 시해한 역적 놈이 감히 나라 일을 걱정하는 것이냐? 여봐라. 무엇들 하느냐? 어서 저 간특한 내시 놈을 끌어내 목 베어라!”

자영의 그 같은 외침에 먼저 두 아들이 칼을 뽑아 들었고, 뒤이어 칼과 도끼를 든 백여 명의 장사들이 재궁 구석구석에서 뛰쳐나왔다. 염락이 칼을 빼들고 어떻게 조고를 지켜보려 했으나 어림없는 일이었다. 조고는커녕 제 한 몸도 지키지 못하고 구슬픈 비명과 함께 칼과 도끼 아래 숨을 거두었다.

사위 염락이 피를 쏟으며 죽는걸 보고서야 조고는 비로소 눈앞으로 다가선 죽음의 그림자를 실감 있게 느꼈다. 두려움으로 갑자기 굳어오는 몸을 날려 달아나 보려 했으나 될 일이 아니었다. 재궁 뜰을 벗어나지 못하고 장사들에게 붙들려 다져진 어육(魚肉) 꼴이 나고 말았다. 일생의 악업(惡業)에 비해서는 너무 싱거운 종말이었다.

하지만 그 뒷일로 보면 조고가 받은 응보(應報)도 결코 헐하지는 않았다. 조고를 죽이고 기세를 몰아 궁궐로 들어간 자영은 갈팡질팡하는 낭관(郎官)들과 궁궐 호위군사들을 휘몰아 조고의 잔당을 뿌리 뽑았다. 그 통에 조고를 따르던 무리 수백이 죽고, 아우 조성(趙成)을 비롯해 조고 곁에서 못된 짓을 하던 피붙이들도 모두 죽음을 당했다.

뿐만이 아니었다. 마침내 궁궐 안을 장악한 자영은 조고의 삼족(三族)을 모두 잡아들이게 했다. 그리고 그들을 함양 저잣거리에 끌어내 모조리 목을 베게 함으로서 뭇 백성들에게 본보기로 삼았다.

그렇게 궁궐 안팎에 퍼져있는 조고의 세력을 모조리 뿌리 뽑은 뒤에 자영은 비로소 묘현의 예를 올렸다. 옥관(玉冠)을 쓰고 화불(華불=옥새에 달린 띠)을 차고 황옥(黃屋=누른 비단으로 덮개를 함)의 수레에 오른 뒤 백관(百官)을 이끌고 칠묘(七廟=제후는 五廟, 천자는 칠묘를 두었다)를 배알했다. 그런 다음 엄숙히 왕위에 오르니 그 위엄이 제법 진나라 성시(盛時)를 떠올리게 하는 데가 있었다.

하지만 그때 이미 진나라는 돌이킬 수 없는 멸망의 늪 속으로 잠겨들고 있었다. 이세(二世) 황제의 어지러운 정치로 높은 벼슬자리는 소인배들이 모두 차고앉아, 조정은 할 일을 제대로 하지도 못하면서 날마다 편안함과 이로움만을 다투는 그들로 악머구리 들끓듯 하였다. 자영이 홀로 깊이 꾀를 짜내고 과감히 결단하여 교활한 역적 조고를 죽였으나, 그것만으로는 무너져 내리는 진나라를 구해낼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자영 부자의 장한 거사(擧事)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파하는 잔치처럼 진나라의 마지막 날은 다가왔다. ‘손님과 친척들이 서로의 수고로움을 달래줄 틈도 없이, 잔치상의 음식이 미처 목구멍을 넘어가기도 전에, 마신 술이 아직 입술도 제대로 적시지도 못한’ 때에, ‘초나라 군사들은 관중을 도륙하고 진인(眞人=한 고조)은 패상(覇上)으로 날아들게’ 된다.

뒷날 한 문제(漢 文帝) 때의 정론가(政論家) 가의(賈誼)는 에서 진나라를 그 지경으로 만든 이세 황제의 허물[過]을 이렇게 요약하였다.

글 이문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