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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자산운용시장은 금맥” 외국계 군침

입력 | 2004-03-04 18:43:00


《“우리의 목표는 한국 자산운용업계의 리딩 컴퍼니(1등 회사)가 되는 것이다.”(푸르덴셜금융그룹 스티븐 펠레티어 회장)

“자산운용시장 선점 경쟁은 덩치가 아니라 서비스(운용능력)가 승부처다.”(미래에셋 박현주 회장)

한국 자산운용시장이 금맥(金脈)으로 떠오르고 있다. 시장 선점을 위한 국내외 금융회사간 경쟁이 치열하다. 국내 자산운용시장은 펀드상품 수탁액 기준으로 152조원에 불과하다. 미국 일본과 비교하면 턱없이 작은 규모. 자산운용회사는 외국계를 포함하여 모두 46개사에 이르지만 상위 몇 개사를 빼면 구멍가게 수준이라는 지적이다.》


하지만 푸르덴셜 피델리티 등 세계적인 자산운용업체가 한국 시장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이들은 5∼10년 뒤 한국 시장의 성장 잠재력을 확신하고 승부수를 던졌다. 한국 자산운용시장의 성장가능성이 그만큼 높다는 얘기다.

▽이미 업계 1위는 외국계=한 증권전문가는 푸르덴셜의 현투증권(현투운용) 인수를 ‘국내 자산운용업의 주도권이 외국회사로 넘어가는 신호탄’으로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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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분석은 통계상으로도 입증된다. 상반기 중 합병예정인 현대투신과 제일투신운용의 수탁액은 2월 말 현재 각각 14조3050억원(업계 4위), 8조410억원(6위). 푸르덴셜은 올 상반기 중 두 회사를 합병할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이 회사는 수탁액 22조3460억원으로 삼성투신운용(17조7160억원)을 제치고 업계 1위로 급부상한다.

외국계의 시장잠식은 올해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외국계가 한투, 대투운용의 강력한 인수 후보자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인수전 참여 의사를 직간접적으로 밝힌 외국계 업체는 △유럽의 대표적인 종합금융그룹인 UBS △사모투자펀드(PEF)인 칼라일 올림푸스 뉴브리지캐피털 △미국계 보험회사인 AIG와 메트라이프 등 쟁쟁하다.

이 중 UBS는 지난달 아시아담당 고위인사가 직접 한국을 방문해 금융감독원과 여러 금융기관과 접촉한 후 대투 인수의향을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UBS는 특히 운용사 외에 상품판매 채널을 확보하기 위해 증권사 인수에도 관심을 표명했다는 것. 2001년 한투운용 인수를 시도하다 실패한 경험이 있는 UBS는 공적자금 투입으로 부실문제가 해결됨에 따라 대투 인수에 상당히 적극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한미은행 지분 매각으로 6600억원대의 시세차익을 챙긴 칼라일이나 자산규모가 10조원을 웃도는 올림푸스 등은 ‘돈도 있고 인수 의지도 있는’ 후보자로 꼽힌다.

또 외국계와 토종자본이 제휴하는 컨소시엄 인수방안도 꽤 유력한 것으로 증권가는 보고 있다.

한편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미국의 피델리티는 1월 말 금융감독원에 자본금 100억원 규모의 피델리티자산운용 설립 예비허가 신청서를 내고 올해 하반기 중 본격적으로 국내 영업을 시작한다. 모건스탠리 계열의 랜드마크투신은 5조원 안팎의 중규모 토종 운용사 인수를 적극 검토 중이다.

▽국내업체의 수성전략=외국계의 파상공세와는 달리 국내 업계의 방어 전략은 아직 구체적이지 못하다.

미래에셋과 동원금융지주가 한투, 대투 인수를 희망하고 있지만 적극적으로 나서기엔 자금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다. 국민은행 김정태 행장은 “외국계 자산운용사와 컨소시엄 형태로 자산운용사 인수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단독 인수는 어렵다는 것이 은행 내부의 중론이다. 하지만 한투, 대투 중 한 곳과 국민은행 계열 국민투신(수탁액 10조원대)과 합병하면 단숨에 업계 수위로 도약할 수 있다.

미래에셋은 수탁액 1조원대의 SK투신과 세종투신 등 소규모 투신사를 인수한 데 이어 매물로 나온 LG투신운용 인수도 강력히 희망하고 있다.

▽한국 자산운용시장은 금맥=외국계 운용사들은 국내 진출의 이유로 ‘높은 성장 잠재력’을 꼽았다. 푸르덴셜 펠레티어 회장은 “한국은 (자산운용에 관심이 높아지는) 건실한 인구 구조를 갖춘 국가”라고 평가했다.

랜드마크투신운용 최홍 사장은 “한국은 상당한 규모의 가계금융자산을 축적하고 있지만 대부분 은행의 단기상품에 들어가 있는 게 문제”라며 “투자상품에 대한 수요가 크게 일어날 것”으로 기대했다.

작년 9월 말 현재 국내 가계금융자산은 1014조원. 이 중 절반이 훨씬 넘는 60%가량이 은행예금이나 현금 형태로 보유되고 있다. 주식은 고작 7.8%에 그친다.

이에 비해 미국은 가계자산의 절반 이상을 주식과 채권에 투자하고 있다.

강창희 미래에셋투자연구소장은 “한국의 가계금융자산은 과거 10년 동안 연평균 10% 안팎으로 성장했다”며 “저금리와 고령화추세가 진전되면서 투자상품 의존도가 갈수록 높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백경호 국민투신 사장은 “올해 기업연금이 도입되면 자산운용시장 규모는 급속도로 커질 것”이라며 “국내외 금융회사가 앞 다퉈 자산운용시장에 진출하려는 것도 이를 선점하려는 의도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강운기자 kwoon90@donga.com

황재성기자 jsonhng@donga.com

▼토종-외국계 누가 이길까▼

외국계 자산운용사의 수탁액이 급증하고 있다. 점유율도 상승 추세다. 이런 결과를 놓고 투자자들이 외국계의 운용능력을 인정한 것으로 해석하기는 어렵다는 게 국내 운용사들의 주장이다. 외형 확대는 적극적인 인수 합병 때문이라는 것.

고객을 확보하는 요인은 운용능력이고 이를 뒷받침할 ‘운용전문가’를 얼마나 많이 확보하느냐가 승패의 관건이라는 지적이다.

▽양적 성장은 이뤘다=최근 몇 년간 외국계 투신·자산운용사들의 시장점유율은 크게 높아졌다. 자산운용협회에 따르면 2월 말 현재 외국계 자산운용회사는 모두 13개(현투 제투운용 포함). 2000년 말 7개사에서 불과 3년2개월 만에 2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들 13개사의 시장점유율은 2000년 말 4.32%에서 올해 2월 말 현재 30.74%로 크게 높아졌다. 외국계의 수탁액 규모는 5조9440억원에서 46조원대로 급증했다.

이런 성장세를 바탕으로 외국계 운용사 5곳은 최근 국민연금이 선정한 아웃소싱 위탁 운용사로 선정됐다.

이들이 강점으로 내세우는 것은 글로벌 네트워크와 브랜드 인지도. PCA투신운용 하나알리안츠 등은 모두 하나같이 모(母)회사가 쌓아 온 100년 이상의 전통과 종합 금융서비스 경험을 집중 부각시키고 있다.

▽국내 시장 안착(安着)은 좀 더 지켜봐야=기업연금제도의 도입, 연기금의 주식투자 확대 등 외국계의 투자 확대를 유인하는 재료는 많다.

그러나 외국계가 승승장구하는 것만은 아니다.

한계비용 수준을 위협하는 낮은 수수료, 펀드 운용회사에 대한 투자자들의 불신 등 외국계운용사가 넘어야 할 벽은 여전히 높다. 특히 국내사와의 합작형태가 아닌 100% 외국계 자본으로 진출한 운용사는 시장 확대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슈로더투신운용의 경우 작년 시장점유율이 오히려 감소했다.

슈로더투신운용 전길수 사장은 “6개월짜리 펀드가 대부분인 국내시장에서 10년 이상의 장기상품이 관심을 끌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맥쿼리IMM 자산운용 이지형 사장은 “외국계 운용사가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 우위일 수 있으나 운용능력 면에서는 누가 낫다고 일률적으로 말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정은기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