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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향악단을 키우자]악단은 `간판`…레슨은 `생계`

입력 | 2004-03-04 20:01:00


“지금으로선, 교향악단원은 부업인 셈입니다.”

지방 교향악단 10년차 단원인 A씨의 연간 수입은 고정 월급과 회당 연주료를 합쳐 1800만원 남짓. 인근 도시의 한 대학에 출강하고 있지만 강의료는 얼마 되지 않는다. 그는 “교향악단원 직함이나 대학 직함은 다 레슨 교사로 인정받기 위한 것일 뿐”이라고 털어놓는다. 오후 5시부터 9시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입시생 레슨에 할애한다. 이러다 보니 교향악단 연주를 위한 연습시간은 거의 없는 편이다.

그나마 고정 급여를 받는 A씨의 경우는 상황이 나은 편. 비상임 악단원 체제로 운영하면서 무대에 설 때만 연주료를 지급하는 악단도 많다. 음대 입시의 ‘비인기 악기’ 연주자들 중 일부는 레슨도 여의치 않아 보험이나 정수기 외판에 나서기도 한다.

●비현실적 급여체계와 주먹구구식 인력운용

악단 월급만으로 생활이 보장되지 않으니 레슨에 매달리고 결과적으로 악단 연습은 등한시하게 된다. 한 민간악단 관계자는 “매년 20% 정도의 인력이 유학 등의 이유로 사직한다”고 밝혔다. 악단이 전망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교향악단의 1년 예산은 얼마나 될까. 지방 B악단의 단원은 총 73명, 1년 예산은 24억원. 서울 민간 K악단의 단원은 75명, 예산은 19억원. 전체 단원이 정단원인 악단의 경우 20억원 정도가 ‘표준 예산규모’이며 예산 중 90% 이상이 인건비로 지출된다.

한정된 예산을 고루 분배해야 하는 지자체로서는 무작정 교향악단만 지원하기 힘들겠지만 문예회관 건립 붐을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경기 고양시는 2000억원의 예산을 들여 2000석 규모의 오페라극장과 1500석 규모의 콘서트홀을 짓고 있다. 이 건설비용은 현재 광역시 교향악단의 100년 유지비용에 해당한다.

일부 지자체의 ‘전시욕’ 때문에 건물만 멋질 뿐 정련되지 못한 화음이 울려 퍼지는 경우가 많다.

●연주력 객관적 평가 필요

많은 단원들이 소속 교향악단을 ‘간판용’ 정도로 생각하는 현실에서 연주력을 제대로 평가할 만한 장치가 없다. 일부 악단들은 기존 단원에 대한 오디션을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연주력 향상을 위해 오디션은 필수”라고 주장하는 악단과 “악단 운영에 비협조적인 단원을 자르려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단원들 사이에 갈등이 증폭되기도 한다. 서울시향도 99년 오디션을 강행하려는 세종문화회관측에 대해 단원들이 파업으로 맞서면서 장기 파행을 겪기도 했다.

김민 코리안심포니 이사장(서울대 음대 학장)은 “외국의 경우 기존 정단원에 대한 재오디션은 없지만 채용 1년차 단원에 대한 정식 입단은 동료단원들의 의견을 들어 엄정한 심사를 거친다”며 “또 동료 단원들의 상시 평가가 파트 수석과 부수석의 임용에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소개했다. 한 교향악단 기획자는 “‘자르기’를 위한 오디션이 아니라 연주력 제고를 위해 동료와 지휘자 등이 참여하는 다면평가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