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중심제를 채택한 나라가 많지만 성패의 양상은 저마다 다르다. 세계 최강국 미국은 이를 훌륭하게 운용하고 있지만, 상당수 나라는 부작용을 겪고 있다. 한 나라의 정치가 잘되고 잘못되고는 제도의 운용에 달렸지, 제도 그 자체에 좌우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논란이 되고 있는 전력산업 구조개편 문제도 같은 맥락에서 살펴봐야 한다. 경쟁체제를 가속화하는 쪽으로 전력산업 구조를 개편하면 전기요금 상승 또는 대정전이 초래된다는 시각이 있다. 하지만 여러 나라의 사례를 보면 전력산업 구조개편의 성패는 이를 시행하는 방법에 달렸지, 구조개편 자체에 좌우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고 본다.
전력산업 구조개편을 단행한 영국 호주 미국 노르웨이 칠레 아르헨티나의 경우 전기요금 하락, 노동 생산성 향상, 소비자 선택권 확대로 인한 서비스 다양화 등 긍정적인 결과를 시현했다. 칠레는 배전 손실이 7년 동안 반으로, 아르헨티나는 3년 만에 반으로 감소했다. 이런 사실은 비효율적이던 전력산업이 경쟁체제 도입을 계기로 효율적으로 변모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최근 미국 이탈리아 영국 등지에서 정전이 발생했다. 하지만 이들 나라는 정전의 원인을 구조개편 탓으로 돌려 이를 철회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전의 비경제적 투자 및 관리에서 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구조개편을 더 촉진하는 데에 노력을 쏟고 있다.
이들 나라가 구조개편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낮은 노동생산성, 낮은 서비스 품질, 높은 전력손실, 높은 운영비용, 정치적 이유에 의한 고비용 등을 제거하기 위해서다. 이는 공공부문에 의한 독점 공급체제에서 오는 문제들이다. 경쟁체제가 되면 기업들은 더 나은 경쟁력을 갖기 위해 기술혁신, 운영 효율성 제고, 경제적 설비투자를 하고자 노력하며 이는 자연스럽게 요금 하락, 서비스 향상으로 이어지게 된다.
우리나라는 에너지원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따라서 에너지 자원의 효율적 사용이 절실히 요구된다. 하지만 이제까지 전력은 공공부문에 의해 독점돼 왔다. 자원의 효율적 이용이 경쟁에 의한 시장체제로 달성될 수 있다는 것이 경제학의 일반 원칙이지만 우리나라의 전력부문은 그게 적용되지 않았던 것이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의 저명한 경제학자인 폴 조스코는 “전력산업 구조개편 및 경쟁 체제는 잘 설계된 전력시장과 병행될 경우 소비자에게 상당한 편익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선진국의 주류 경제학자들이 전력산업의 구조개편 및 규제 완화에 찬성하고 있음은 우리의 구조개편 방향 설정에 의미 있는 시사점을 주고 있다.
모든 나라가 생존을 위해 무한경쟁을 하고 있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전력산업만 예외일 수 없다. 세계은행은 전력산업 구조개편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구조개편을 하려면 정부 출범 초기에 강하게 추진해야 성공 확률이 높아진다고 지적했다. 더 늦춰서는 안 된다. 한시라도 빨리 결론을 내려 방향을 결정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김성수 한국산업기술대 교수·전력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