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동아일보의 ‘지한파(知韓派) 네트워크’ 시리즈를 호주에서 관심 있게 읽었다. 미국 등 서방 강국 및 동북아 지역의 지한파 인맥을 다룬 흥미로운 시리즈였다.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동남아 지역의 네트워크가 빠진 것이었다.
지금까지 정부 정책이 서방 강국과 동북아에 편중돼 왔고 동남아에 대해서는 소홀했던 것이 사실이다. 동남아 전략 부재의 피해는 최근 자유무역협정(FTA) 과정에서도 잘 드러났다. 한국은 동남아국가연합(ASEAN)과 FTA를 단 한 건도 체결하지 않음으로써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입게 될 형편에 처했다.
인구 5억4000여만명, 국내총생산 7000억달러의 거대시장인 ASEAN은 한국 입장에서는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지속적인 흑자시장이다. 현재 ASEAN은 국내 수출의 11.4%를 차지하는 4대 교역국 중 하나다. 그러나 FTA를 통해 동남아시장 선점에 나선 일본 중국 호주 인도에 시장 전체를 빼앗길 가능성이 크다.
동남아 지역에 대한 전략은 우호적인 인적 네트워크 형성이 기반이 되어야 한다. 호주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사회 문화적 협력 관계를 바탕으로 동남아지역 인적 네트워크 형성에 꾸준히 투자해 온 국가다. 동남아 우수대학생 유치 등을 통해 인적 자원에 다양하게 투자해 온 결과 호주는 동남아지역 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유학국 중 하나로 꼽힌다. 동남아에서 호주에 오는 유학생 수는 연 7만∼8만명에 이르며 이들은 귀중한 인적 네트워크 기반이 됐다.
그뿐 아니라 호주는 동남아에 대한 연구 및 교류활동도 활발히 펼쳐 왔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의 한-호 아시아연구소(KAREC)도 동남아 및 대양주 지역을 연구하고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기관 중의 하나다.
이 같은 노력의 결과 동남아에서 호주의 이미지는 매우 우호적이다. 한 예로 베트남에서 한국은 그동안의 대규모 투자와 지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베트남전 참전국’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호주는 같은 참전국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지원국가’로 인식되고 있다.
한국이 궁극적으로 동아시아의 중심국가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동남아와의 우호적인 관계가 필수적이다. 그동안 동북아 중심국가를 목표로 동북아에 정책이 집중돼 왔으나 국가 간의 정치·경제 관계에서 중심국가가 되는 것은 그 관계의 변화를 주도할 수 있는 역량이 상대적 우위에 있을 때 가능한 얘기다. 현재 한국은 일본 중국과 경제적으로는 경쟁 관계에 있고, 정치적으로 한반도 통일 문제로 도움이 필요한 제한적 위치에 있다. 최근 동북아에 한류 열풍이 불고 있지만 세계문화 속에서 한국문화는 중국 혹은 일본의 주변부 문화로 인식되는 것도 현실이다.
이와 달리 다행히 동남아는 산업적으로 협력적 관계에 있고, 정치적으로는 한국이 역량을 발휘하기가 상대적으로 용이하며, 한국문화가 지역의 대안문화로 확산 중인 지역인 것이다. 이러한 기반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동남아에 대한 적극적인 정책 수립과 협력적 인적 네트워크 구축에 나서야 한다.
권승호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 교수·한-호 아시아연구소 부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