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세계 음악팬들 앞에 당당히 내세울 만한 교향악단이 없는 나라는 한국뿐일 겁니다.”
한 음악 전문 인터넷 게시판에 교향악 마니아가 털어놓은 불만이다.
인구 45만명에 불과한 룩셈부르크의 ‘룩셈부르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지난해 내한해 뛰어난 합주력을 과시했다. 시벨리우스 교향곡 전집 CD 등으로 유명한 핀란드 ‘라티 교향악단’은 인구가 10만명에 불과한 작은 도시에서 키운 교향악단이다. 그런데 왜 한국에는 세계무대로 도약할 만한 교향악단이 없는 것일까.
음악 전문가들과 음악 팬들은 ‘한국 대표급’으로 육성 가능한 악단으로 KBS교향악단을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최근 부천 필하모니 등이 주목할 만한 연주력을 과시했지만, 1년 예산(70억원)이나 단원 평균 급여(평 단원 연봉 4000만원) 등을 볼 때 다른 상위급 교향악단보다 훨씬 나은 환경을 갖추고 있기 때문.
1981년 국립교향악단에서 KBS 산하로 이관된 이 악단은 오디션을 거치면서 오디션 불참자를 포함해 절반에 가까운 단원들을 퇴진시켰다. ‘세계무대로 도약하기 위해서’라는 명분이었다. 97년 정명훈씨가 “세계수준으로 도약시키겠다”며 KBS 상임지휘자로 취임했으나 몇 달 안 돼 “도약할 여건을 마련해주지 않는다”며 중도하차했다.
여러 차례 ‘세계 상위급’을 기약했던 과거에 비해 오늘날 KBS교향악단의 모습은 초라하다. “90년대 이후 뚜렷한 연주력의 성장을 말하기 힘들다”고 음악평론가 홍승찬씨는 말했다. 9명의 교향악단 사무국 소속 직원은 전부 KBS 일반직 직원. 올해 초에는 그나마 유일한 음악전문가로 일했던 전문위원 1명을 퇴직시켜 업무의 전문성을 기대하긴 힘든 실정이다. 2002년 중국 연주여행을 마지막으로 해외공연 일정도 기약이 없다.
음악평론가 유혁준씨는 “일본 NHK교향악단의 경우 98년 예산이 KBS 교향악단의 5배가 넘는 310억원에 이르렀다”며 “교향악단에 과감한 투자를 위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고, 악단은 세계무대에서 활동을 펼쳐 이 투자에 대한 정당성을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공연매니지먼트협회 강석흥 회장은 “현 단계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는 교향악단들이 재단법인으로 독립하는 것과 책임경영 체제를 도입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현재처럼 교향악단들이 거대기관의 산하 조직으로 남아 있는 상황에서는 도약을 위한 ‘인센티브’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운영경비를 모(母) 기관의 예산에서 보조해주되 운영 주체를 독립시켜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
실제로 NHK교향악단을 비롯해 일본 도쿄에서 활동하고 있는 9개의 교향악단 중 8개가 독립된 재단법인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렇게 운영할 경우 현행 공연 및 세제 관련 법제상 대기업 등의 투자유치도 가능해진다.
강 회장은 “일본 소니사가 미국 보스턴 심포니에 대대적인 지원을 해 미국인들의 마음에 다가갔던 사례를 상기해볼 만하다”고 강조했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