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9시 뉴스에 뭐가 방송되는지 저도 TV 보고서야 압니다. 취임했더니 9시 뉴스 큐시트를 가져 왔기에 그러지 말라고 했지요.”
정연주 KBS 사장은 취임 1주년을 앞두고 5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KBS 보도 시사 프로그램의 편향성을 지적하는 질문을 이렇게 피해갔다.
이날 간담회에는 지난해 4월 정 사장 취임 이후 제기돼온 KBS 보도 시사 프로그램의 편향성 논란에 기자들의 질문이 집중됐다. 하지만 정 사장의 답변은 아리송하기만 했다.
지난달 23일 KBS 1TV의 ‘인물 현대사’ 진행을 그만두고 곧장 열린우리당에 입당한 문성근씨도 도마에 올랐다. KBS 내부에서도 윤리강령을 묵살하고 공영방송의 명예를 실추시킨 ‘문성근 사건’에 대해 책임 지는 사람이 없다는 불만이 많은 상태다.
한 기자가 “이번 사태를 문씨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 아니냐”고 묻자 정 사장은 제작진에게 슬쩍 화살을 돌렸다.
“내가 사장으로 취임하기 전 문씨가 내정돼 구체적 선정과정을 모른다. 하지만 프로그램의 일차적 책임은 제작자에게 있다.”
정 사장의 주장대로 방송사 사장이 프로그램 제작에 관여하지 않고 제작진의 자율에 맡기는 것은 바람직하다. 문제는 일이 잘못될 경우 최종 책임을 누가 지느냐 하는 것이다. 선거를 앞두고 특정 프로그램이 편파 논란을 불러일으킬 때 “TV 보고서야 알았다”는 말로 사장이 책임을 피해갈 것인가.
정 사장은 “일각에서는 (진보성향의) 칼럼니스트 정연주라는 프리즘을 통해 KBS를 본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그렇다고 ‘프로그램 제작에 관여를 안 하니 (프로그램의 문제에 대해) 책임도 없다’는 것은 면피하려는 의도로 보일 뿐이다.
정 사장은 공영방송의 정치적 중립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신문은 정치적 지향성이 훨씬 강하다. 신문도 공정성 객관성 중립성을 지켜 나가야 한다”고 오히려 신문을 역공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연간 4800억원의 시청료를 ‘준조세’ 형태로 거둬들이는 공영방송 KBS의 책무와 독자들이 구독료를 내는 신문 매체의 특성을 무시한 발언이다.
이진영기자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