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5일 치러질 17대 총선은 한국 보수, 개혁, 진보 세력의 성쇠와 진로를 좌우할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은 '차떼기당'의 이미지를 벗고 신보수의 깃발을 세울 수 있을까. 집권한 '개혁세력'의 문제는 무엇이고, 갈라선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은 유권자들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을 것인가. 어느 때보다 원내 진출 가능성이 커진 민주노동당 같은 '진보세력'은 과연 현실정치에 안착할 수 있을까.
동아일보는 이런 궁금증을 풀기 위해 미래전략연구원과 공동으로 '4·15 총선 긴급 점검-한국 정치세력의 현주소와 미래'란 주제로 긴급토론회를 개최했다.
1일 토론회('한국 보수세력, 새로워질 수 있는가')에는 한나라당 박진(朴振) 원희룡(元喜龍) 의원이 초청 연사로 참석했고, 3일 토론회('한국 개혁세력, 무엇을 바꾸고자 하는가')에는 민주당 설훈(薛勳) 의원과 열린우리당 김영춘(金榮春) 임종석(任鍾晳) 의원이 초청됐다.
4일 토론회('한국 진보세력, 뿌리내릴 수 있는가')엔 녹색사민당 장기표(張琪杓) 대표와 민노당 노회찬(魯會燦) 중앙선대본부장이 참석했다. 토론자로는 이재호(李載昊) 본보 논설위원, 미래전략연구원 공동대표인 이근(李根)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와 최태욱(崔兌旭) 한동대 국제어문학부 교수가 참가했다.
◆1일 '한국 보수세력 새로워질 수 있는가' 토론 내용
1일 토론회에선 '차떼기당'으로 상징되는 한나라당의 위기는 어디서 비롯됐으며, 그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에 대해 논의가 집중됐다.
▽박진 의원=한나라당 전신은 신한국당, 그 전신은 민자당이다. 민자당은 1990년 3당 합당에서 나온 것이다. 3당 합당은 근대화, 산업화, 민주화가 뭉친 것이다. 그러나 물리적 결합은 됐을지 몰라도, 화학적 용해는 안 됐던 것 같다. 원내 제1당의 막강한 정당이지만 시대정신의 파도를 제대로 타지 못 했다. 국민 입장에서 보면 한나라당은 가지고 있는 능력이나 책임에 비해 스스로 행동하는, 소신 있는 모습을 못 보여줬다.
▽원희룡 의원=보수 세력의 위기는 정당성의 위기이다. 한나라당은 내면적 지지자가 많은데도, 부패 정당 이미지가 충격적 사건을 통해 터져 나오면서 지지할 명분을 잃어버렸다. 술자리에서 한나라당을 지지하면 스스로가 기득권 부패 세력으로 비쳐지는 것이다. 보수세력의 문제는 지지자가 술자리에서 말문이 막히는 속앓이 위기로 나타나고 있다. 비록 반대자가 비웃더라도, 보수 세력은 애국 세력, 부국강병 세력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질 수 있고 그래야 전파력을 가질 수 있다. 그런 능동성과 공격성을 잃고 있다.
▽이근 교수=근본적 고민이 안 되고, 전략적 고민만 하는 것 같다. 진보정당이나 다른 정당이 추구하는 것과 똑같이만 나가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무엇을 보수하려 하는지에 대해 지지자들이 헷갈리게 된다.
▽이재호 위원=한나라당의 역사를 부정하는 것은 그 정체성을 부인하는 것과 같다. 역사를 인정하는 위에서 새 모델을 찾아야 한다. 한나라당 구성원 중에는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 얘기만 나오면 고개를 돌리는 사람이 있는데, 스스로 자신감이 결여된 것 아닌가. 당당한 보수로 나와야 한다.
▽원 의원=정치적 측면에서 실수가 많이 발견되는 곳이 상징 투쟁이다. 상징투쟁은 기마전 같은 것인데, 기수의 모자를 빼앗기면 게임이 끝난다. 민족이란 상징은 원래 우파의 것이다. 그러나 친일문제, 자주냐 동맹이냐 논란 등 몇 번의 이슈 싸움을 통해 '민족'이란 모자는 어느새 좌파의 손에 쥐어져 있다. (한나라당은) 반대를 위한 반대라고 할까, 그 때 그 때의 이슈에 대해 지나치게 분석론적으로 반대하다 보니, 큰 입장이나 이념을 뺏겨 버려 오히려 반민족적 그룹처럼 돼버린 측면이 있다.
▽박 의원=보수의 위기만 얘기했는데, 보수의 기회에 대해 말하겠다. 역사는 아이러니컬하게 발전한다. 과거 프랑스혁명 때 급진 파괴적 혁명에 반대되는 것으로 보수 성향이 강화됐다. 노무현(盧武鉉) 정권 1년에 대한 국민의 시각은 상당히 불안하고 위험스럽다는 것이다. 급진적 개혁 지상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신보수에 대한 갈망과 기대는 더 커졌다. 국민은 실험정치보다 검증된 정치를 선택할 것이다. 제2창당의 기분으로 보수정치의 부정적 유산을 과감히 떨치고, 보수가 국민을 안심시키고 국가를 올바르게 끌고 갈 수 있도록 역량과 능력 향상시켜야 한다.
▽이 교수=안정은 보수 세력이 갖는 중요한 차별성이다. 그러나 '구관이 명관이다'는 식의 안정과 검증으로 가면 위험하다. '프로페셔널하다(전문적이다)'는 것으로 대체해야 한다.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