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배우 손숙씨는 젊은 사람 못잖은 건강을 자랑한다. 작은 사진은 사랑에 빠진 40대 여성을 열연한 연극 '매디슨 카운티의 추억' 중 한 장면.
《연극배우 손숙씨(59). 내년이면 환갑이다. 그러나 얼마 전 연극 ‘매디슨카운티의 추억’에서 나이는 무색했다. 그는 사랑에 빠진 40대 주부 프란체스카 역을 훌륭히 소화해 찬사를 받았다. 관객 중 누구도 그의 나이를 느끼지 못했다. 그는 30년간 무대에 서면서 단 한번도 병으로 쓰러진 적이 없다. 이틀간 밤을 새워도 콧노래를 부른다. 매일 오전 9∼11시 SBS 라디오 ‘아름다운 세상’도 진행한다. 가냘픈 몸 어디에서 그런 힘이 생기는 것일까. 그는 “정신이 건강해야 몸이 건강해진다”고 말했다. 20대가 주로 찾는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
# 철없는 소녀처럼…
그는 연애를 동경한다. 지중해 섬에서 로맨틱한 사랑을 나누는 꿈을 꾼다. 설령 이루지 못한다 해도 꿈만으로도 설레지 않는가.
“가수 장사익씨와 소설가 양귀자씨가 ‘평생 철이 안들 여자’라고 하더군요. 내가 나잇값 못하고 주책이 없는가요? 호호호.”
소녀 취향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정신건강의 근원이기도 하다. 그를 좀 더 엿보자. 그는 ‘단순’하다. 속상한 것은 아예 보지도, 다가서려고도 하지 않는다. 얼굴이 심술궂게 변하고 마음도 흐트러지기 때문이란다.
그는 소녀처럼 깔끔하다. 주위가 어질러진 것을 참지 못한다. 그냥 두면 마음도 어지럽단다.
소녀다운 ‘철없음’은 이미 정평이 나 있다. 3년 전 처음으로 골프장에 나갔을 때다. 초보인지라 공은 대부분 공중으로 날아가기보다 떼구루루 굴러갔다. 개그우먼 김미화씨가 말했다던가. “공을 굴리면서 그렇게 재미있어 하는 사람은 언니뿐일 거유.”
골프를 시작한 계기도 엉뚱하다. 개인적으로 몹시 힘든 때였다고 한다. 그는 공을 치면서 “에이. 미운 사람 때리는 셈 치자”고 생각했단다. 그래서 골프에 재미를 붙였고 지금은 스스로를 ‘골프장의 기쁨조’라고 부른다.
일과 건강의 상관관계를 물었다. 그는 “지겨워하면 스트레스가 생기고 피곤해져 몸에 이상신호가 생긴다”고 말했다. 재미있게 일을 해야 건강하다는 것.
실제 그는 연극 연습을 할 때도 분위기를 자주 깬다. 모두가 한창 연습할 때도 불쑥 “빨리 끝내고 놀자”며 소리를 지른단다. 좋아하는 일이라 해도 심각하게 빠지면 정신을 해치고 몸을 망가뜨린다는 생각 때문이다. 일과 휴식의 조화 없이는 건강도 없다는 얘기다.
#여유 있게 느긋하게…
그는 스스로를 ‘아날로그 웰빙족’이라고 불렀다. 기계를 싫어하는 탓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보다는 건강정보를 찾으려 인터넷을 뒤지지도 않고 따로 건강계획도 세우지 않기 때문이란다.
명상, 요가 등 정신건강을 위한 운동도 하지 않는다. 아침형 인간, 웰빙족 등 요즘의 건강 유행에 대해서도 비판한다.
“지나치게 건강에 신경 쓰는 풍토가 오히려 건강을 망친다는 생각이 들어요. 요즘 유행하는 ‘몸짱’도 건강에 대한 집착이 만들어 낸 허상일 뿐입니다. 유행에 민감하기보다는 나름대로의 건강철학을 세우는 게 중요하죠.”
그는 토막 잠의 ‘달인’이다.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다. 비행기를 타면 이륙 전에 안전벨트를 맨 뒤 바로 잠에 빠진다. 비행기가 땅에 닿기 전에 깨는 법은 없다. 기차 버스 등 어떤 교통수단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그 안에서 그냥 쓰러져 자기도 한다.
“30분∼1시간 잠을 자고 나면 스트레스가 확 풀립니다. 정신도 맑아지고요.”
그는 약속시간을 철저히 지키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항상 미리 도착해 차를 마시거나 책을 읽는다. 불안 요소를 미리 없애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 위해서다. 그는 “약속장소까지 30분 정도 걸릴 것 같다 싶으면 1시간 전에 출발하라”고 권했다.
봉사활동은 정신건강을 지키는 데 특히 좋단다. 그는 현재 자선단체인 ‘아름다운 가게’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나이 들어서 좋은 게 무엇이겠습니까. 돈 많은 거요? 아닙니다. 자원봉사지요. 얼마나 감사하고 즐거운 일입니까. 나서 보세요. 그럼 건강해집니다. 정말입니다.”
김상훈기자 corekim@donga.com
▼전문의 평가▼
정신건강은 개인의 성격이나 환경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일반적으로 여유 있고 느긋할수록 마음은 편안해진다.
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권준수 교수는 연극배우 손숙씨의 정신건강 비결 중 봉사활동에 가장 높은 점수를 줬다.
권 교수는 “봉사를 함으로써 고귀한 인간이란 자존심을 느끼게 되며 결과적으로 정신건강에 큰 보탬이 된다”고 말했다.
토막 잠을 자는 것도 의학적으로 매우 좋다. 일반적으로 잠은 뇌를 쉬게 해 주며 깨어 있을 때의 경험을 깊이 각인해 주는 효과가 있다.
따라서 평소 토막 잠을 자두면 피로에 지친 뇌를 그때그때 쉬게 해 줄 수 있고 뇌가 쉴 수 있는 시간도 상대적으로 늘어난다.
권 교수는 약속시간에 30분 일찍 도착하는 생활습관에 대해서도 좋게 평가했다. 생활에 지장이 없는 범위 내에서 편안하고 여유롭게 행동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이롭다는 얘기다.
정리정돈을 잘 하는 생활습관이 좋다고 단정할 수 없다. 그러나 정돈 과정에서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생각을 정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효과가 없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소녀 취향은 어떨까. 현실의 불만을 일시적으로 해소시켜 카타르시스 작용을 촉진하는 간접 효과가 있다는 것이 권 교수의 평가다.
김상훈기자 corekim@donga.com